
단 1년 동안 유통산업을 이루는 대기업부터 온라인 쇼핑몰, 신선식품 플랫폼까지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기업들이 연이어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선 것은 지난 한 해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유통 시장 구조조정의 이유는 나라 안팎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전 세계적으로 지속된 경기 불황의 여파로 인한 소비침체이다. 다음으로는 국내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이로 인한 구매 니즈의 변화이다. 주요 국제기구와 국내외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아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고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은 경제 특성상 현재의 불안한 세계정세와 불황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 삼고(高) 지수는 경제 활동을 더욱 위축시킨다. 코로나19 팬데믹부터 시작된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소비시장이 침체하며 유통업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모바일 쇼핑의 확산과 첨단 물류 시스템의 진화는 소비자 구매 행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스마트폰으로 수많은 상품을 비교해 구매할 수 있고 다양한 SNS 매체로 상품의 심도 있는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상거래는 이커머스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이커머스의 발전은 물류 산업으로 연계되면서 당일 배송을 넘어 1시간 안에 구매 상품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오프라인 유통에는 상거래가 아닌 다른 차별성이 숙제가 주어졌고, 온라인 유통은 단순한 상품 구색과 가격을 넘어서는 차별화된 서비스가 새로운 성공 전략으로 요구되고 있다.
경기 불황과 소비자 니즈 변화는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다. 변화는 슈퍼마켓, 면세점 심지어 온라인 유통까지 유통산업 전반에 위기로 찾아왔다. 이에 대응하듯 유통업계에는 온·오프라인 유통을 가리지 않고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고 있고, 신세계, 롯데쇼핑, GS리테일 등 국내 유통 거목들 또한 흔들리고 있다.
신세계는 2024년부터 그룹 내 희망퇴직을 단행 중이고 올해도 이마트24가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롯데그룹은 그룹사 전반에 걸쳐 경영효율화와 체질 개선을 시행 중으로 유통 부문에서는 세븐일레븐과 롯데온에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편의점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GS리테일 역시 GS25 편의점과 GSSHOP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유통업계에서 가장 힘든 업태를 뽑으라면 면세점을 들 수 있다. 팬데믹 상황이 끝났음에도 면세 사업은 침체가 계속되며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신라면세점, 현대면세점, 롯데면세점 등 면세 업계 모두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온라인 유통도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1300K, 바보사랑에 이어 CJ ENM의 취미 전문플랫폼 펀샵이 3월에 운영을 종료했다. 문고리닷컴, 집꾸미기도 폐업하며 가구인테리어 전문몰도 파고를 피해 가지 못했다. 이와 같은 국내 소비 위축에서 시작된 유동성 위기는 소자본·소규모의 전문몰들에 직격탄이 되었다. 한때 국내 3위 온라인 쇼핑몰에 올랐던 SK그룹의 11번가는 지속적으로 인적 효율화를 하면서 1년 동안 35%나 되는 직원이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온·오프라인 유통을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 유통산업에 역대급 한파가 시작된 것이다.
내년에도 오프라인 유통의 하락세는 계속될 것이며 온라인 유통의 성장세마저 감소할 것이라 예상한다. 국제 정세의 안정을 기대하기에는 최근 세계 곳곳의 국가 간 분쟁이 이어지고 있어,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올해는 민생 회복 지원금으로 단기간 소비 진작 효과로 유통 시장에 온기가 있었지만, 내년에는 정부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부양책을 쓸 여력이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유통업체가 위기 극복을 위해 주목할 점은 유통 시장 내 양극화 현상이다. 유통산업과 업태별 실적의 숫자 예측은 암울하지만, 업태별 승자들은 승자독식의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려스러운 것은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가격경쟁과 프로모션 경쟁이 심화하여 작은 기업이 버티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유통업체의 폐업을 보면서 내가 이용하는 유통 브랜드와 플랫폼이 안전한가를 고려하게 되며 대형 유통업체로 쏠림은 더 심해질 것이다. 이커머스의 쿠팡과 네이버쇼핑, 창고형 할인점의 코스트코, H&B의 올리브영, 패션플랫폼의 무신사가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유통 시장에서는 강한 기업만 살아남는 승자독식이 될 것이다. 1996년 본격적인 성장 가도에 들어선 이후 약 30년간 대한민국 유통 시장은 쉬지 않고 달려 왔다. 수준 높고 견고한 선진국 유통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앞선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그랬듯 유통 시장의 구조조정과 재편이라는 성장통을 피할 수 없는 시점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급류에 휩쓸리는 소상공인과 소규모 사업자들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