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 단계별 특징을 보면 1단계는 순부채 수준이 낮고 부채를 상환하기에 충분한 소득을 창출한다. 2단계에선 부채와 투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증가 속도가 소득으로 상환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다. 3단계에서는 거품이 꺼지며 부채·신용·시장·경제가 위축된다. 4단계에선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부채를 소득 수준에 맞춰 줄이고, 5단계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균형에 도달하며 다음 사이클이 시작된다. 달리오는 특히 5단계 후반부를 빅 사이클의 종말을 가져오는 불황과 전쟁 직전 국면이라고 경고한다.
그에 따르면 단기 부채 사이클은 6년±3년, 장기 부채 사이클은 80년±25년 주기로 나타난다. 단기 부채 사이클이 누적돼 장기 부채 사이클을 형성하고, 더 이상 상환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때까지 지속된다는 것이다. 단기와 장기 부채 사이클의 가장 큰 차이는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에 대응해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지 여부다. 장기 부채 사이클의 수축 국면에 접어들면 막대한 통화와 신용을 풀어도 경기를 되돌리기 어렵다고 본다. 다만, 그가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더 덧붙인 개념은 생산성 향상의 우상향 추세다. 단기 부채 사이클보다는 장기 부채 사이클과 생산성 우상향이 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달리오는 올 3월 기준으로 미국이 1945년 이후 13번째 단기 부채 사이클에 직면해 있으며, 현재 그 3분의 2지점을 지났다고 평가했다. 빅 사이클로는 5단계에 들어섰다고 봤다. 이 단계의 국가는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며, 분열되고, 외부 위협에 노출돼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때문에 이 시기에는 정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재정적자를 충분히 축소하되,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지 않도록 경기 부양적인 통화정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다만, 주목할 점은 현재 미국 경제가 완전 고용에 가까우며 성장은 적당히 왕성하고, 인플레이션은 약간 높으며, 민간 부문의 손익계산서와 재무상태표는 상당히 양호한 상태라고 본 뒤 내놓은 해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그의 논리와 진단을 우리 현실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보기에 따라 다른 의견이 있겠지만 한국은 정점과 부채 축소가 겹쳐 있는 3~4단계 어디쯤 와 있는 것으로 읽힌다. 또, 장기 부채 사이클 주기와 해방 80주년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는 점에서 이 또한 한 사이클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우리 경제 현주소를 보면 부채 문제는 오래전부터 아킬레스건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100% 안팎을 넘나들며 세계 최상위권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값이 가계부채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기업부채까지 더한 전체 민간신용은 명목GDP의 두 배를 웃돈다. 이런 상황은 이미 경제정책의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 당장, 최근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과감히 인하하지 못하고 있다. 직전 금리 인상기에도 같은 이유로 추가 금리 인상에 제동이 걸렸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당장 금리결정에 매몰되기보단 ‘부채 빅 사이클’을 점검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고민과 대응책 마련에 나서길 고대해 본다. kimnh21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