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지표는 ‘상승쪽’ 과열판단 일러
반도체 등 핵심산업 경기 주시해야

세상에서 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거품 붕괴’라는 단어일 것이다. 자산가격이 녹아내린다는 말이니 생각조차 하기 싫은 용어다. 지난 수백 년간 세계 자산시장에서는 수많은 거품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난 일을 까맣게 잊고 또 다시 거품을 쌓는 데 몰두한다. 지난 100년 간 총 8번의 꽤나 굵직한 거품 붕괴가 있었으니 대략 13년에 한 번꼴로는 금융시장에 엄청난 난리가 있던 셈이고 그때마다 자산가격은 큰 폭의 조정을 겪었다.
1929년 미국 대공황과 1970년대 원유시장의 거품 붕괴,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일본의 주가와 집값 하락, 1997년 아시아 환율 붕괴,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와 2015년 중국 주식 거품 붕괴 등이 그런 거품붕괴 목록이다. 이 중 1995년부터 2000년 초까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400% 오른 뒤 반년 만에 80%나 폭락해 세계버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주가가 단기에 60% 폭락한 동시에 미국의 주요 도시 집값이 50% 넘게 빠져 세계 최강국인 미국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도매금으로 몸살을 앓았다.
자산시장에 거품이 생기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공통점은 뚜렷하다. 즉 막대한 통화량 증가와 무분별한 신용(부채) 증대, 특정 자산을 버블로 몰고가는 시대적 배경과 정책 실수, 그리고 사람들의 탐욕이 이 거품 비빔밥의 주 재료였다. 주식, 채권, 환율, 부동산을 막론하고 가격이 너무 많이 오르면 대개 큰 폭의 되돌림이 찾아온다. 자산시장 거품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시장 참여자들이 시장 열기에 푹 빠져 당시에는 그것이 거품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또 사람들이 거품이 붕괴되기 전에 미리 탈출하지 못하는 까닭은 처음엔 자산가격이 살짝 조정을 받지만 작은 균열이 점차 더 큰 매도세를 불러오고 이로 인해 실물경기마저 타격을 받으면서 당초 계산했던 적정 자산가격과의 괴리가 커지고 이로 인해 더 큰 매도 폭탄이 쏟아져 결국 훗날 예전 가격이 거품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증시에는 과연 얼마나 거품이 끼어 있을까?
우선 미국증시를 살펴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체 시가총액 비율이 230%에 달해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의 150%를 훌쩍 넘고 있다. 또 현재 S&P500 지수는 12개월 예상이익의 22.5배로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최근 10년 평균 18배와 20년 평균 16배에 비해 살짝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전체 시가총액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혁신기업들의 이익이 전체 시장 이익의 약 40%를 감당하고 있어 그런대로 주가의 정당성이 유지되고 있다. 또 잘나가는 상위 7개 빅테크 종목들(M7)의 주가는 지금 1년 후 예상이익의 30배로 거래되고 있는데 이들의 평균 마진율이 27%에 달해 지금 이들의 주가를 거품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면이 있다.
현재 우리 코스피는 예상이익의 11배와 순자산가치의 1.3배로 각각 거래되고 있는데 이는 아직 아시아 평균의 60%에 불과하다. 주도 업종인 반도체 경기가 바로 꺾이거나 세계경기가 당장 꼬꾸라지지만 않는다면 지금 한국증시를 거품으로 보기는 어렵다. 특히 한국증시는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2005년 이후 약 20년 만에 그간 눌려 있던 시장 프리미엄(PER등)이 크게 튈 만한 상황이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경기가 내년까지 버텨준다면 미국이나 한국증시 모두 짧은 조정은 있겠지만 상승 추세가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