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건립 규제ㆍ주민 반대
뒷받침 없다면 일시적 호재 불과해

정부가 미국 엔비디아와 한국의 인공지능(AI) 생태계 역량 강화를 위한 협력을 추진한다. 공공과 민간을 합쳐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총 26만장 이상 수급하고 자율주행·피지컬AI·제조AI 등에서 엔비디아와 국내 기업 협력이 추진된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엔진은 들어오고 있지만 이를 실제로 돌릴 도로와 연료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I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할 입법이 지연되고 전력망 확충 논의도 여야 이견 속에 멈춰 서면서 산업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AI 고속도로’는 GPU,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네트워크, 전력 인프라를 포괄하는 국가 산업생태계 전략이다. 반도체가 AI 시대의 엔진이라면 데이터센터는 주행로, 전력은 연료에 해당한다. 즉 GPU 확보는 출발점일 뿐이며, 실제 경쟁력은 이 요소들이 얼마나 빠르게 연결되고 효율적으로 확장되는지에 달려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프라 확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입법이 제때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에는 AI 산업 전반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 여야를 막론하고 다수 발의됐지만, 상당수가 상임위 심사 단계에서 머물러 있다. 법안의 골자는 데이터센터 특구 지정, 전력 인프라 구축 지원, 인재 육성 및 연구개발 촉진 등으로 비슷하지만 전력 공급 방식을 두고 여야 간 방향성이 엇갈리며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이다. 민주당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국민의힘은 원전 중심의 안정적 공급을 우선시하며 각기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로 인해 ‘AI 고속도로’의 동력원인 전력 인프라가 법적 근거조차 마련되지 못한 채 정책 추진력도 반감되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립 또한 규제와 주민 반대, 환경영향평가 지연 등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서비스 기업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수도권 내 인허가 완료 데이터센터 33곳 중 절반 이상이 주민 민원 등으로 인해 공사 지연 상태다.
데이터센터 건립 자체도 녹록치 않지만 더 큰 산은 전력 공급망 구축이다.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최고경영자) 서밋 ‘아시아 퍼시픽 LNG 커넥트(Asia Pacific LNG Connect)’ 세션에서 “AI가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전력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며 “이 엄청난 에너지를 어디에서 공급할 것인지 또 어떻게 신뢰할 수 있고 친환경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글로벌 과제”라고 화두를 던졌다.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가 잇따라 계획되더라도 정작 이를 가동할 전력 인프라가 따라오지 못하면서 ‘산 넘어 산’이라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5년 내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현재보다 165%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한 전력 인프라 투자만 해도 최대 7000억 달러(약 95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GPU는 들어왔지만 전력·데이터 인프라·입법이 제때 받쳐주지 못하면 AI 생태계의 경쟁력이 일시적 호재에 그칠 수 있다”며 “법적 기반과 전력 인프라 확충 없이는 ‘AI 고속도로’도 결국 멈춰 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