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에게 묻는 아이들

입력 2025-11-10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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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성균관대학교 인공지능융합원 교수

▲김형태 성균관대학교 인공지능융합원 교수 (성균관대학교 )
▲김형태 성균관대학교 인공지능융합원 교수 (성균관대학교 )
교실이 잠잠했다. “선생님, 이럴 땐 AI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수업 도중 학생의 짧은 한마디에 공기가 멈췄다. 교사는 순간적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책상 위의 노트북보다, 손 안의 스마트폰이 먼저 열리는 시대. 아이들이 교사에게 질문하는 일은 점점 줄고 있다.

대화창 속 인공지능은 언제든 대답하고, 위로하며, 지친 마음을 가볍게 어루만진다. AI는 언제나 친절하고, 판단하지 않으며,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제 아이들의 고민은 교실 밖 서버의 알고리즘 속으로 흘러들고 있다. 최근 EBS 뉴스 기사에서 보도된 한 조사결과는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생의 15.5%가 “고민이 있을 때 생성형 AI를 이용한다”라고 답했다. 교사에게 의지한다고 응답한 비율(14.9%)보다 높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학교가 더 이상 정서적 안전망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회적 경고음이다. AI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언제든 대화할 수 있으며, 감정적 부담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아닌 언어의 모방일 뿐, 관계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서울의 한 상담교사는 “AI에게 마음을 맡기는 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사이 신뢰가 무너진 사회의 징후”라고 말했다. 결국 학생들이 AI에게 기대는 이유는 기술의 편리함 때문이 아니라,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으려는 방어의 심리다. 현장의 현실은 더 냉혹하다. 한 명의 전문 상담교사가 2천 명이 넘는 학생을 담당하고, 학교폭력, 자해, 우울, 학업 스트레스가 하루에도 여러 건씩 터져 나온다. 학교는 여전히 위기 대응에 급급하고, 상담은 ‘문제가 심각한 학생 중심의 단기 개입’으로 제한된다. 정작 일상적 불안과 외로움을 가진 학생들은 상담실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 구조 속에서 AI는 빈틈을 파고든다. AI는 언제든 반응하고, 감정의 리듬을 맞춰주며, 심리적 문턱을 낮춘다. 결국 아이들은 사람이 아닌 알고리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미국은 학생 250명당 상담교사 1명을 배치하도록 제도화했지만, 우리 학교는 여전히 몇몇 교사의 헌신으로 버티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결국 아이들의 마음을 지탱하는 것은 개인의 열정이 아니라, 제도의 의지이자 사회의 책임이다.

이런 현실을 정부도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모든 세대가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 국민 AI 교육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 전문가까지 생애 전 주기를 아우르는 교육체계를 구축해 AI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생활과 일의 언어로 익히게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제 교실과 기업, 지역사회가 하나의 학습 생태계로 묶이는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말 그대로 ‘전 국민 AI 리터러시 시대’의 서막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물어야 한다. AI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배움의 끝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게 시켜줄 수는 있어도, 인간의 마음을 대체할 수는 없다. AI를 익히는 교육이 인간의 본질을 잊게 한다면, 그건 혁신이 아니라 퇴행이다.

최근 들어 대학 구성원으로서 체감하는 변화는 분명하다. 관내 시․도교육청을 비롯해 여러 지자체에서 AI 교육과정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학교 현장은 기술 중심의 코딩 교육을 넘어, AI와 인간의 관계를 중심에 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대응하기 위해 국내 교육 전문기업과 협력해 사회진출을 앞둔 학생들을 위한 을 함께 준비 중이다.

AI 활용 능력뿐 아니라, 직업세계 변화에 대응할 AX(Algorithmic Transformation) 역량진단 체계를 구축해,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설계하고, 변화하는 노동시장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돕는 연구를 시작했다. AI 기술이 노동과 산업을 바꿔놓는 속도보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속도가 더 느리다면 그 사회는 결국 기술의 종속자가 될 수밖에 없다.

교육의 본질은 언제나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분석과 위로의 문장을 만들어도 그 문장 속에는 체온이 없고, 진심의 숨결이 없다. 학생들이 다시 교사에게, 친구에게, 세상에 말을 걸 수 있도록 학교는 기술보다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AI는 도구이지만, 교육은 관계이고, 관계는 결국 사람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진짜 혁신은 ‘인공지능을 다루는 학생’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다.

이렇듯 인간이 만든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 ‘사람에게 배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AI에게 묻는 아이들이 다시 사람에게 배울 수 있도록, 교육은 이제 인간의 회복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여전히 교실, 바로 사람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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