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이상미의 예술과 도시] 문화권력 재편 예고한 ‘루브르 사건’

입력 2025-11-0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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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아트 대표이사/백남준포럼 대표

정복전쟁으로 약탈해온 유물 도난
유럽중심 문화헤게모니 붕괴 알려
전세계 문화주권 움직임 거세질듯

단 7분 만에 루브르 박물관의 심장부가 무너졌다. 2025년 10월 19일 오전 9시 30분, 아폴론 갤러리에서 프랑스 왕실 보석 8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약 8800만 유로(약 1460억 원) 상당의 유물은 건설 작업자로 위장한 범죄자가 사다리차를 이용해 침입하며 강탈했다. 이는 단순한 도난 사건이 아니라, 유럽 문화 제국의 상징이자 도덕적 기반을 뒤흔드는 일격이었다.

루브르의 역사는 약탈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793년, 프랑스 혁명 정부는 왕실 소장품을 국민의 유산이라 선언하며 루브르를 개관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은 각국 문화 전리품을 쓸어 모았다. 1798년 이집트 원정을 통해 수천 점의 유물이 파리로 옮겨졌고,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전역의 교회와 궁전에서 예술품을 약탈했다. 1815년 워털루 패전 후 연합군이 5000점을 회수했지만, 여전히 수십만 점의 외국 유물이 루브르에 남아 있다. 현재 소장품 48만5000점 중 전시되는 것은 3만5000점뿐이며, 이집트 유물만 5만 점이 넘는다.

루브르뿐만 아니라 대영박물관,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등 유럽 주요 기관들은 자신을 보편 문화 수호자로 자처한다. 그러나 그들의 방대한 컬렉션은 식민 지배와 전쟁 약탈의 산물이었다. 이집트, 그리스, 나이지리아, 인도, 터키는 수십 년간 문화재 반환을 요구했지만, 서구 박물관들은 시효 만료 혹은 전문적 보존을 이유로 일관되게 거부해왔다.

그러나 이제 흐름이 바뀌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독일과 네덜란드로부터 베냉 청동기를 되찾았고, 그리스는 엘긴 마블의 귀환을 지속적으로 요구 중이다. 이집트는 네페르티티 흉상의 반환을 공식 요청했다. 루브르와 파리의 주요 박물관들이 2021년 이후 식민지 약탈 문화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연달아 기획한 것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윤리적 압박에 대한 응답이다.

이번에 사라진 보석들은 모두 나폴레옹 제국의 산물이다. 나폴레옹 1세가 마리 루이즈에게 선물한 에메랄드 목걸이, 외제니 황후의 사파이어 티아라와 브로치는 제국 권력의 물리적 상징이었다. 이들은 왕실의 사치를 넘어 정복과 지배의 기억을 응축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도난은 단순한 자산 손실이 아니라, 약탈 증거가 사라진 사건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 보석들이 원형 그대로 회수될 가능성을 낮게 본다. 고가의 유물일수록 해체돼 보석 단위로 분리·유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손실은 물질이 아니라 상징에 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가 불과 7분 만에 침입당했다는 사실은, 유럽 중심 문화 헤게모니의 붕괴를 상징한다. 대영박물관 또한 최근 수천 점의 유물 분실을 공식 인정했다.

나폴레옹이 약탈로 세운 박물관이 200년 후 같은 방식으로 침탈당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약탈로 쌓은 제국은 결국 자신이 약탈한 유물조차 지킬 수 없게 됐다. 루브르의 빈 진열장은 단순 범죄 현장이 아니라, 북반구 문화패권의 종언을 알리는 예고편이다. 보석은 언젠가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르나, 무너진 문화 권위는 회복되지 않는다.

이 사건은 단순히 보안 실패나 도난 사건으로 축소할 수 없다. 루브르는 프랑스뿐 아니라 서구 문명의 자존심이자, 유럽 중심주의의 미학적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상징이 스스로의 균열을 드러냈다. 디지털 시대의 문화 주권은 더 이상 보존의 명분 아래 은폐될 수 없으며, 글로벌 시민사회는 문화재의 원산지와 맥락, 그리고 반환의 정의를 묻고 있다. 루브르의 7분은 짧았지만, 그 파장은 길고 깊다. 이번 사건은 21세기 문화권력의 재편을 예고하는 서막이자, 누가 세계의 기억을 소유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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