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탓 아닌 국가적 문제 인식하고
‘일자리 절벽’ 극복에 여야 함께해야

취업 사기 미끼로 캄보디아에 유인되었다 사망한 대학생의 유해가 현지에서 발견된 지 74일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 금쪽같은 대한민국의 22살 청년이 먼 이국땅에서 범죄집단에 감금돼 구타와 고문을 당하여 극심한 고통을 겪은 끝에 생명을 잃은 사건은 온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비슷한 운명에 처한 청년이 수천 명에 달한다는 소식은 더욱 놀랍다. 법무부에 따르면 캄보디아로 출국해 돌아오지 않는 한국인이 한 해 30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캄보디아 장기 체류자의 상당수는 범죄에 희생되었거나 연루되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현지에서 변사한 한국인 숫자도 한두 명이 아니다. 외교부는 최근 6년간 캄보디아에서 사망한 한국인 변사자가 82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단순 사고나 자연재해가 아닌 범죄에 의해 캄보디아 한 나라에서 한국인이 수십 명이나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잠재적 희생자가 수천 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제야 알려진 게 의외이다. 만일 국내에서 범죄집단에 의해 일 년에 수십 명이 고문당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졌다면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처럼 여론이 들끓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정부가 소극적 태도를 보인 이유는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외국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현지로 유인되었거나 자발적으로 갔거나 다들 판단력이 부족한 청년들의 불찰로 보는 시각에 기인한다. 범죄에 연루된 청년이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구분이 애매하다는 것도 있다. 캄보디아에서 구출되어 송환된 청년들은 온몸에 문신하여 희생자인지 범죄자인지 구별이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액을 보장하는 취업 광고가 온전한 일자리일 거라 믿고 가는 청년은 거의 없다. 한국도 아닌 캄보디아에 월 1000만 원을 줄 수 있는 정상적 직장이 없다는 현실은 다 안다. 사기이거나 불법 행위에 종사할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도박하는 심정으로 청년들은 고국을 떠난다. 현지에 도착해 자발적이거나 강압적으로 일단 범법 행위를 저지르면 빠져나올 길이 없다. 운 좋게 구출되어 국내로 송환되어도 범죄에 연루된 죄로 인해 법적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이처럼 캄보디아에서 범법자가 되는 청년이 한두 명이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도 된다. 하지만, 수천 명에 이르면 그건 나라의 문제이다.
청년들이 사기나 범죄의 희생양이 될 것을 무릅쓰고도 캄보디아에 가는 이유는 다 알고 있다. 바로 국내 일자리 부족이다. 청년 고용률은 17개월 연속 감소하여 45%대로 주저앉았다. 청년 취업자는 올 8월에 전년 동월 대비 22만 명 가까이 감소했다. 일자리를 못 구하고 빚에 쪼들리는 청년은 불법 취업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 피싱 말단 ‘전달책’의 70%가량이 구직 사이트의 고액 일자리 광고를 통해 모집된 청년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헬조선을 탈출하여 외국에 가서 모험을 걸게 된다.
집단적으로 청년들을 타국으로 내모는 상황이 안타깝다. 국가가 청년들에게 안전한 생업을 제공하지 못하니 해외로 위험한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북쪽의 청년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용병으로 나가 사지로 몰리고 남쪽의 청년들은 캄보디아 범죄집단에 조직원으로 팔려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어쩌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멀쩡한 청년들이 생사를 알 수 없는 험지로 나가게 되었는지 한탄스럽다.
정치인들이 말로는 청년을 위한다고 하지만 청년 대책에는 관심이 없다. 청년이 미래의 주인공이라며 국회의원이나 최고위원 자리 몇 개 주는 것으로 생색을 낸다. 정부는 청년 취업이 중요하다 홍보하면서 실제 정책은 노동규제를 강화하고 정년을 연장하여 청년 일자리 걷어내는데 더 열심이다. 청년의 자산을 불려준다는 금융상품은 몫돈과 거리가 멀다. 그것도 정부 따라 청년내일채움공제, 청년도약계좌, 청년미래적금 등으로 이름이 바뀌어 혼란만 키운다. 국가적인 청년 홀대가 누적된 결과가 지금의 캄보디아 취업 사기 사건으로 나타난 것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우리 청년들이 계속 해외 험지로 나가 사고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정치권과 정부는 뒷북치듯 피해자를 구제하고 피의자를 처벌하며 법석을 떨 것이다. 사후 대처가 필요하지만, 그보다 사전 예방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절실한 대책은 청년들이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돈 벌며 안전하게 생활하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인구감소 시대에 소중한 자원인 청년을 보호하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기여하는 인재로 키우는 정책을 최고 중요한 국가 과제로 삼아야 한다. 청년 사회안전망 구축에 여야, 노사, 좌·우, 보수·진보를 초월해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캄보디아 사기 사건이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