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는 규모가 아니라 방향의 싸움
방산ㆍ원전 중심의 구조적 성장 섹터와 배당 테마로 차별화
카피 경쟁은 투자자 가치 훼손…차별화로 승부

금정섭 한화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은 1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단기 점유율 경쟁보다 핵심 섹터 중심의 전략으로 신뢰를 쌓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상장지수펀드(ETF) 산업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의 싸움”이라며 “단기간 자산을 불리는 것보다 시장 변화에 맞는 상품을 정확히 제시해 신뢰를 얻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 본부장은 1999년 우리증권에 입사한 뒤 교보악사자산운용, GS자산운용 등을 두루 거쳤다. 2012년 KB자산운용에서 ETF전략팀을 신설하며 본격적으로 ETF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KB자산운용의 ETF 순자산은 약 4000억~5000억 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는 수년 만에 이를 10조 원 가까이로 늘리며 회사를 업계 3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일찍부터 ETF가 자산운용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금 본부장은 “교보악사자산운용 재직 시절 뱅가드 창립자 존 보글의 저서를 통해 인덱스 투자 철학을 접하며 ETF가 자산운용의 중심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며 “투명한 구조와 데이터 기반 운용 덕분에 투자자가 이해하기 쉬운 점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대학원에서 ETF를 논문 주제로 다루는 등 이 분야에 대한 꾸준한 고민과 연구를 이어왔다.
올해 3월 한화자산운용으로 옮긴 뒤 내세운 키워드는 ‘선택과 집중’이다. 금 본부장은 “모든 분야에서 1위를 하겠다는 접근보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영역에서 구조적 성장이 가능한 섹터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유행을 뒤쫓지 않는 원칙도 분명히 했다. 그는 “인공지능(AI), 이차전지, 전력 인프라 등 인기 테마가 많지만 모두 따라가지는 않는다. ETF는 한 번 내면 5년, 10년 책임져야 하는 상품이라 단기 흥행용 출시에는 의미가 없다”며 “방산·원전·배당처럼 구조적 성장 기반이 확실한 섹터에 자원을 배분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화자산운용의 라인업도 이를 반영한다. 현재 73개 ETF를 운용하며 전체 운용자산(AUM)은 6조6846억 원(10월 14일 기준)에 달한다. 대표 상품으로는 ‘PLUS 고배당주’(순자산총액 1조6143억 원, 1년 예상 분배수익률 약 4.9%), ‘PLUS 자사주매입고배당주’(상장 3주 만에 순자산 1000억 원 돌파), ‘PLUS 글로벌희토류&전략자원생산기업’, ‘PLUS K방산’ 등이 있다.
특히 ‘PLUS K방산’(연초 이후 수익률 180.05%)을 비롯해 ‘PLUS 한화그룹주’(137.49%), ‘PLUS 태양광&ESS’(103.08%) 등 3개 상품이 국내 ETF 수익률 상위 20개에 포함됐다.(ETF CHECK, 10월 14일 기준) 방산 관련 상품만 4개(PLUS K방산, PLUS 글로벌방산, PLUS K방산레버리지, PLUS K방산소부장)에 달한다. 이들 합산 운용자산은 약 1조2126억 원에 이른다. 방산·원전·배당 3대 구조 테마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듬고 성과가 확인된 테마는 파생·패밀리 상품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배당 ETF의 전략적 비중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든 한국 시장에서 배당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금 본부장은 “기업이 성숙 단계로 들어서면 성장 대신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에 나서야 한다. 배당을 보지 않고 투자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며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에서 안정적 현금흐름을 원하는 투자자에게 배당 ETF가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조직 운영의 축은 ‘리서치’다. 금 본부장은 “ETF 사업은 상품 비즈니스가 아니라 리서치 비즈니스”라고 규정하며 “제조부터 투자자 커뮤니케이션까지 모든 과정이 시장 분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애널리스트·바이사이드 출신을 중심으로 컨설팅 인력을 보강하고 운용 인력 일부를 고객 접점으로 전환해 ‘설명 가능한 상품’과 ‘반복 가능한 성과’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투자자 교육과 리서치 발간을 통해 생각을 꾸준히 공유하면 한 번 성과를 경험한 투자자가 다음 상품에서도 우리를 선택한다. 그 선순환을 키우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시장 과열 구도에 대한 견해도 덧붙였다. 금 본부장은 “플레이어가 한정된 시장에서 비슷한 상품이 잇따라 출시되면 보수 경쟁만 심해지고 결국 투자자 가치가 훼손된다”며 “차별화가 어려운 영역에는 굳이 진입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ㆍ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에너지ㆍ기술ㆍ전략자원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며 “이 흐름 속에서 방산, 원전, 희토류 등은 구조적 성장성이 뚜렷한 섹터로 보고 한화운용은 이런 거시적 변화에서 지속 가능한 투자 기회를 발굴해 상품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 관점에서의 ETF 활용법도 제시했다. 그는 “ETF는 죄가 없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포트폴리오를 짜는 레고 블록”이라고 비유했다. 이어 “좋은 ETF는 규모나 보수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 자신의 목표와 위험 허용도에 맞는 블록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핵심”이라며 “특히 장기 투자자는 시장을 떠나지 않는 편이 유리하고, 은퇴자처럼 변동성에 취약한 투자자는 배당·커버드콜 등 현금흐름 중심으로 코어를 세우는 게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최근 코스피 상승세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그는 “3600선 돌파는 과열이라기보다 2년간 부진이 해소된 딜레이된 상승”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주주환원 정책, 수출기업 실적 개선, 저평가 해소 기대가 맞물리면 코스피 4000선 돌파 시나리오도 열려 있다”며 “연말까지는 추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