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트럼프식 편드협상’ 기로에 선 한국

입력 2025-10-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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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 단장

직접투자·수익배분 확대 원하는 美
국내 재정·외환 안정이 선결 과제
국익중심 논리로 협상원칙 지켜야

한미 간에 진행 중인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 협상은 새로운 통상 질서 속에서 거래적 경제 관계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은 자유무역 규범보다는 양자 협상 중심의 거래적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일본, 유럽연합(EU), 한국이 모두 대규모 대미 투자 약속을 내걸고 관세를 일정 수준으로 낮추는 방식의 절충안을 마련해 왔다.

다만 한미 양국은 세부 협의 과정에서 발생한 입장 차이로 인해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미 간 입장 차이는 구조적으로 크다. 가장 큰 쟁점은 투자 방식이다. 한국은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대출이나 보증 형태로 자금을 운용하며 직접투자 비중을 최소화하려 한다. 이는 재정 부담과 외환시장 충격을 줄이려는 의도지만, 미국은 일본과의 합의처럼 직접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수익 배분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투자금 회수 이후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범위에서 수익을 나누자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초기부터 높은 배분율을 주장하고 있다.

관세 인하의 문서화 여부도 쟁점 사항이다. 한국은 25%에서 15%로 낮아진 관세 상한을 법적·행정적으로 확약해 산업계의 불확실성을 줄이려고 하지만, 미국은 유연한 합의문 수준에 그치려고 한다.

여기에 외환시장 충격에 대한 안전장치, 달러 조달 방식, 통화스와프 등 금융적 고려가 한국에는 필수적이지만 미국은 이 부분을 한국의 자체 과제로 돌리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기술적 이견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일본과 EU의 사례는 흥미로운 비교점을 제공한다. 일본은 신속히 5500억 달러 약속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면서 자동차 등 핵심 품목에 15% 관세 상한을 확정했다.

그러나 투자 구조와 수익 배분이 불투명해 국내 기업들의 부담이 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EU는 6000억 달러 투자 확대를 약속했지만 대부분 민간 주도의 의향 성격에 가깝고, 대신 EU 제품 전반에 15% 관세가 적용되었다.

미국은 일본과 EU와의 합의 경험을 근거로 선례를 강조하며 한국에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경제 규모, 외환시장 구조, 산업 의존성을 고려할 때 일본이나 EU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은 속도를, EU는 집단 협상력을 택했다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약속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외환적 부담이 크고 시장 의존성이 높아 더욱 신중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미 간의 입장 차이는 단순하게 수치와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협상 철학의 차이로도 드러난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눈에 띄는 성과를 필요로 하지만, 한국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거시경제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높은 수익 배분 구조와 직접투자 확대는 한국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동시에, 자본 유출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향후 협상은 단기간에 일괄 타결되기보다는 부분 합의를 통한 절충안 모색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요구하는 전면적 직접투자와 높은 수익 배분을 한국이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한국이 요구하는 구속력 있는 문서화와 외환 안전장치를 미국이 당장 수용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관세 인하를 먼저 실행하고, 투자 펀드의 세부 구조는 후속 협의에 맡겨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반드시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 첫째, 직접투자 비중을 최대한 낮추고 보증 한도를 명확히 설정해 재정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관세 인하의 법적 확약을 확보해 산업계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셋째,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장치를 마련해 환율 급등락에 대비해야 한다.

이번 투자 협상은 단순히 관세 문제를 넘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단기적 관세 인하라는 가시적 성과와 중장기적 재정 및 외환 안정성이라는 구조적 과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일본과 EU의 사례를 참고하면서도, 한국은 외환시장 민감성과 경제 의존도를 감안해 우리만의 협상 논리를 세워야 한다.

협상의 중요한 원칙을 끝까지 지켜내야만, 관세 인하의 단기적 성과가 장기적 비용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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