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관세 후속협상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장기 표류하면서 대한민국 제조업의 미래를 건 핵심 정책의 동력마저 위협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제조 인공지능(AX) 전환'이 거대한 통상 현안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추진 동력이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16일 기자 간담회에서 “미국 관세 협상이 아니면 제조 AX 얼라이언스가 제1순위 현안”이라고 언급했다.
해당 발언은 현재 시급한 통상 문제와 중장기 미래 산업 육성 사이에서 산업부가 처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셈이다.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제조업 혁신보다는 한미 관세 협상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는 데 정책 역량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한미 관세 협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산업부의 정책적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3500억 달러(약 486조 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패키지 구성 등 핵심 쟁점을 둘러싼 양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협상 타결은 안갯속이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 최근 김정관 산업부 장관에 이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까지 연이어 미국을 방문했으나,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하며 교착 상태만 재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부의 핵심 인력과 자원은 통상 문제 해결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적인 예가 산업부를 향한 자동차 업계의 빗발 치는 민원이다. 현재 미국은 한국과의 관세 후속협의 지렛대로 한국산 자동차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업계는 매달 약 4000억 원의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관세율을 반영해 영업이익 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등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자동차 업계에서 빨리 좀 해결해 달라는 민원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다른 정책 사안에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산업부의 핵심 과제인 제조 AX 추진에도 불똥이 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0일 1000여 개 기업·기관이 참여해 야심 차게 출범한 제조 AX 얼라이언스는 2030년까지 100조 원 이상의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산업 정책이다.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정책 초기 단계부터 세심한 설계와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문제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정책이 우선순위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 예정인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10월 30일~11월 1일)를 계기로 조속한 협상 타결을 이뤄낸다는 방침이지만 양국 간 이견이 커 타결이 성사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