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주체인 시행사 자기자본비율을 현행 3%에서 정부 목표치인 20%까지 늘리면 평균 총사업비가 약 7% 감소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러한 내용의 KDI FOCUS '부동산 PF 자본확충의 효과와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황 위원에 따르면 2022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경제 전반에 중대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는 부동산 PF 위기 원인으로 '낮은 자기자본'이 지목된다. 시행사는 총사업비 대비 3% 수준의 적은 자기자본을 투입하고 시공사 보증에 의존해 대규모 대출을 받아 사업을 추진하기 때문에 공사비 급등, 부동산 경기 침체 등 충격이 발생하면 자본이 부족한 시행사가 무너지고 보증을 한 시공사와 대출을 공급한 금융기관으로 위험이 전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사업주체가 20~40% 수준의 자기자본을 투입하는 주요국과 달리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며, 금융·건설 부문 전반에 시스템리스크가 우려돼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 황 위원의 생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도 지난해 11월 PF 자기자본비율을 현 3%에서 20%로 높이기 위한 중장기 대책을 발표했다.
황 위원이 시행사가 자기자본을 늘렸을 때 어떤 영향이 있는지 분석한 결과 자기자본비율이 높을수록 PF 사업 착수 이후 공급비용인 총사업비가 줄고 사업 과정에서 분양·부실 리스크 등 각종 위험요인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기자본비율이 현행 3%에서 정부 목표치인 20%까지 증가하면 총사업비는 평균 3108억 원에서 2883억 원으로 7.2% 감소했다. 주거용 사업장은 총사업비가 평균 3151억 원에서 2801억 원으로 줄어 감소 폭(-11.1%)이 더 컸다. 총사업비는 토지비, 공사비, 금융비, 기타비로 구성되는데 자기자본비율이 증가할 때 토지비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공사비, 금융비, 기타비가 줄면서 총사업비가 감소했다.
가장 큰 비용 요소인 공사비(총사업비 대비 평균 52%)는 자기자본비율이 17%포인트(p) 증가할 때 평균 1606억 원에서 1503억 원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시행사가 시공사에 지급하는 대금인 공사비는 주로 공사 인건비와 자재비로 구성돼 일반적으로 자본구조와 특별한 관련이 없지만,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시행사가 PF 대출을 받으려면 시공사 보증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시행사는 보증 능력이 높은 시공사를 유치하기 위해 인건비와 자재비뿐 아니라 상당한 보증 위험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해 이를 포함한 공사대금은 더욱 많아지게 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자기자본이 많고 대출이 적으면 시공사 보증 부담이 줄어 시행사가 높은 프리미엄을 주면서 고신용 시공사를 확보할 필요가 줄어든다. 분석 결과 자기자본비율이 17%p 증가할 때 시공사 신용등급이 정크본드 등급일 확률은 약 15% 상승했다. 시행사가 자기자본이 많을수록 신용등급이 보다 낮은 시공사를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는 의미다.
PF 자본확충은 각종 리스크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자본비율이 20%까지 증가하면 주거용 사업장의 Exit분양률(PF 대출 상환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분양률)은 약 13%p 감소했다. 자본이 증가하는 대신 부채가 감소하면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Exit분양률도 낮아지는 것이다. 감소 폭 13%p는 Exit분양률이 평균 60% 수준임을 고려할 때 상당히 큰 폭이다.
미국에서 2015~2024년 착공된 1만5000여 개 아파트 사업장 분석 결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증가하면 부도·파산·압류 등으로 부실에 빠질 확률이 상승했다. LTV가 높으면 일단 부실에 빠진 사업장이 재구조화 등을 통해 회생할 확률도 낮았다. LTV가 높을수록 준공 후 차환 확률도 낮았다. 저(低)자기자본+다(多)부채 사업장은 준공 이전에 실패를 면해도 준공 이후 부실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PF 자본확충은 이러한 긍정 효과가 있음에도 대출보다 조달비용이 높아 지분 투자자 유치가 어렵고 각종 개발사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부정 효과도 있다. 이에 향후 PF 정책은 자본확충을 요구하는 규제와 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유인책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황 위원의 생각이다.
황 위원은 정부가 금융기관별 PF 대출의 총액한도를 제한할 경우 저자본 사업장에 한해 적용하는 방식으로 대책을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 경우 금융기관은 저자본·고보증 사업장 대출을 줄이고 남은 자금을 상대적으로 자기자본비율이 높은 사업장에 제공하려고 할 것이고, 그러면 사업주체들은 자기자본을 늘리려는 유인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기자본비율이 낮을수록 PF 대출 충당금 적립의무를 강화하겠다는 정부 규제에 대해서는 "우선주는 상환 의무가 없는 경우 적격 자기자본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주는 PF 사업주체가 갚아야 할 의무가 아니라 국제회계기준상 자기자본으로 분류되며, 지분 투자자는 경영권이 없는 대신 수익을 우선 배당받을 수 있는 우선주에 관심이 많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토지 출자 시 양도세 부담을 수익 실현 시점으로 한시적 이연한다는 정부 PF 대책은 상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위원은 "PF를 고자본 구조로 개선하는 것은 중장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어려운 과제라 양도세 이연 제도는 지속돼야 한다"며 "PF 사업은 3년 이상 장기에 걸쳐 이뤄지기 떄문에 일몰 기한이 있는 경우 제도 변화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도세 이연이 세수 감소로 이어질 거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양도차익을 출자 시점에서 과세하면 과세표준이 개발이익을 반영하지 못해 낮게 책정되겠지만 수익 실현 시점에서 과세하면 개발이익을 반영해 높게 산정될 것이므로 세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