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의 보도 ‘시장 다변화’ 회의적
혁신기술 초격차 경쟁력만이 살길

미국의 통상압력이 날로 거세며 거칠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인하 대가로 우리나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을 밀어붙이고 있다. 관세협상에서 미국은 한국 정부가 3500억 달러를 3년 이내에 대미 투자 재원으로 출연할 것을 요구한다. 외화보유액(4160억 달러)의 80%가 넘는 달러를 현금으로 미국에 제공하면 국가신인도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해 제2의 외환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
한국 정부가 현금 투자에 난색을 표하며 관세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미국은 다각도로 압력을 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의 관세협상 체결로 미국과의 통상분쟁이 종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나를 얻으면 더 큰 것을 요구하는 강압 협상의 달인이다. 관세는 예고편이며 비관세 장벽을 놓고 더 큰 요구가 나올 수 있다. 방위비 협상에서는 평택 미군기지 양도와 같은 요구가 제기될지 모른다.
미국 시장은 중요하며 관세협상은 원만히 타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끌려가서는 끊임없는 요구에 시달리게 된다. 국내 여론도 처음에는 미국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이제는 협상이 깨지더라도 국익을 지켜야 한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가조차도 미국에 3500억 달러를 줄 바에 그 돈으로 관세로 피해 본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 훨씬 큰 이득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25% 상호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손실액은 연간 7조~9조원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결렬되고 상호관세가 더 올라가더라도 한국 경제가 받는 피해는 대미 투자 패키지 3500억 달러(약 483조 원)에 훨씬 못 미칠 것이다.
관세협상이 결렬되면 그 후과는 매우 심각할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 유럽에서도 거액을 받아 냈는데 한국과의 협상에서 실패한다면 자존심에 손상을 입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럼 경제적 조치를 넘어 다방면에 걸쳐 한국 기업에 대한 제재가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사드 규제로 촉발된 ‘한한령’과 유사한 ‘봉한령’이 미국에서 등장할 것이다. 극단적으로 미국에 출장 가거나 유학 가는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과 입국 조치가 엄격해질 수 있다.
이런 판국에서 한국 기업들은 이전에 중국 시장에서 당한 것보다 더 크고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출 기업의 대응방안으로 ‘시장다변화’를 거론한다. 정부도 미국발 통상압력에 대응해 수출시장 다변화를 지원한다. 주력 수출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전가의 보도로 거론되는 시장다변화는 궁색한 도피책에 불과하다. 큰 나라 시장일수록 통상장벽을 쌓는 보호무역 시대에 다변화해서 갈 곳이 남아 있지 않다.
결국, 관세협상이 실패해 미국에서 높은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그 불리함을 극복하고 정면 돌파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관세장벽은 시장에 높은 담을 쳐서 외국 기업의 접근을 차단하는 조치이다. 이런 벽을 뛰어넘는 무기는 혁신기술이다. 우리 기업들은 첨단 기술을 빨리 모방해 대규모 투자로 양산하는 것에는 능숙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혁신기술의 선도적 개발은 소홀히 하였다. 대표적 사례가 현재 산업과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인공지능(AI) 기술이다. 미국과 중국의 테크기업들이 경합하는 AI 시장에 우리 기업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을 표방하는데, AI 일등 국가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동안 말로만 부르짖었던 신시장 창출의 일등 개척자(First Pioneer) 전략을 전력으로 추구해야 한다. 선도적 혁신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생사의 문제가 되었다.
더불어, 브랜드마케팅을 제대로 해야 한다, 마케팅을 통해 브랜드를 키우는 것이 가격경쟁에서 해방되는 길이다. 관세로 가격이 비싸도 고객이 우리 브랜드를 찾으면 해결된다. 현재 대부분의 수출은 1차 바이어에게 판매하는 것에 그친다. 바이어는 가격을 제일 중요시하여 가장 싸게 공급하는 수출기업만 찾는다. 브랜드마케팅은 바이어가 아니라 현지 소매상 더 나아가 최종 고객에 다가가 우리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의 관세협상이 결렬되면 한국 못지않게 미국도 피해를 볼 것이다. 벌써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이 물가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관세협상을 강경하게 밀어붙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관세협상을 길게 끌고 나가는 것이 현명하다.
미국의 요구를 성급히 수락해 국익을 손상하거나 또는 거부해서 제재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어정쩡한 상태가 낫다. 그동안에 기업들은 무역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혁신기술과 브랜드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국발 통상 압력의 시련을 통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초격차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