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피하고 지속가능경제로 전환
디지털인프라 갖춘 한국 주도할만

수백 년 동안 인류의 성장동력이었던 자본주의가 지금은 기후위기와 양극화라는 중증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 보고서(Oxfam, WID 등)에 따르면, 전 세계 하위 50%가 보유한 자산은 2% 남짓에 불과하고,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격차의 수준과 속도 모두가 문제다.
기후위기 역시 자본주의의 체질적 한계를 드러낸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로 성장을 유지하는 엔진은 지구의 생태적 수용능력을 초과했고, 그 반작용이 물가 불안·식량 위기·공급망 충격으로 드러난다. 특히 우리가 따르는 ‘채취-생산-소비-폐기’의 선형경제는 생태계의 순환 메커니즘과 충돌한다.
이 경고는 새롭지 않다. 로마클럽 ‘성장의 한계’(1972)는 인구·자원·오염 등의 변수를 종합하여 예측한 결과, 21세기 중반쯤 시스템 한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발표 후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반세기 전의 경고가 오늘날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와 같은 균열의 징후는 전 세계 곳곳에서 관찰된다. 인도네시아에선 생계비·정치 특권 문제로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네팔에서도 Z세대가 주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프랑스도 장기적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복병이 등장했다. 초거대 인공지능의 급진적 확산이 정책 공간과 노동·지식의 경계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메커니즘을 멈추게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파국적인 결과가 예상되는데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따라서 체제를 전면 부정하기보다는 내부에 치유 메커니즘, 즉 면역체계를 심어야 한다.
만약 시장교환가치의 구성을 바꿔 치유 메커니즘을 내부에 이식하는 구조적 변화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가능한 모델로 바꿀 수 있다면 즉시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기존의 자본주의는 물질을 기반으로 효용·편의·희소성에 서사를 입혀 상품을 만든다. 그러나 이것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면 새로운 해독제가 필요하다. 현재 자본주의 중심에서 벗어나 외부효과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기부나 탄소감축, 생태보전 등 살림활동을 시장교환가치의 핵심으로 편입시키는 메커니즘인 ‘살림자본주의’를 추진하자는 것이다.
탄소감축, ESG(환경·사회·재배구조), 지속가능 활동을 기부·비용이 아니라 정량 평가가 가능한 자산으로 전환하고, 그에 따른 살림 서사를 결합해 ‘살림명품’이라는 프리미엄 카테고리를 만들어 유통시킨다면 자본주의 메커니즘하에서 점진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한 마을이 구성원과 함께 탄소 100t을 감축해 조각탄소크레딧(MCC)을 획득했다고 하자. 텃밭·에너지 절약·공동체 문화 형성 과정에서 탄생한 살림 서사를 예술·디자인과 결합해 살림상품으로 출시한다. 매출의 유의미한 비율을 마을에 재순환해 추가 감축과 공동체 돌봄에 재투자하면, 매출 증가→살림 확산의 양(量)·질(質) 동시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이 구조가 확산되면, 국내총생산(GDP) 등 성장 지표는 정상 작동하면서 결과는 생태·공동체의 회복으로 귀결된다. 특히 ESG 도입 기업과 임팩트를 중시하는 고소득층이 살림명품을 의도적 소비로 선택할 경우, 양극화 완화(재분배+지역재생)와 기후대응(감축 가속)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이 접근은 자본주의의 병든 구조 내부에 면역체계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소비가 늘수록 감축과 살림 행동이 증폭되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 다시 말해 살림 활동을 비용에서 자산으로 이동시키자는 것이다.
실행을 위해선 국제 탄소시장 경험이나 NFT(대체불가능토큰) 기반 자산화 시도처럼 이미 축적된 실험과 제도를 결합하면 실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탄소 측정 전문가, NFT·디자인 전문가, 마케터, 법률·금융이 협업하는 집단지성으로 정교화할 수 있다.
한국은 이런 전환을 주도할 역량을 갖춘 드문 국가다. 세계적 디지털 인프라, 높은 시민참여 문화, 그리고 ‘살림’이라는 고유의 생활 철학이 결합하면, 위기 돌파형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산업화, 민주화, ‘금 모으기 운동’, K-방역, K팝처럼 위기 속에서 창조적인 전환에 성공한 경험이 있다. 자본주의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또 다른 도전, 그것이 바로 ‘살림자본주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