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5.8.15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https://img.etoday.co.kr/pto_db/2025/08/20250815110329_2212536_655_719.jpg)
"낡은 공식으론 저성장 못 벗어나"…AI·규제개혁에 미래 달렸다
대한민국 경제가 기로에 섰다. 60여 년간 세계가 놀랄 만한 압축성장을 이뤄내며 '한강의 기적'을 썼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는 이제 옛말이 됐다.
반세기 넘게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성장 모델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느린 말(Slow Horse)'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우리 경제가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23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1960년대까지 한국은 가발, 신발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에 의존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하지만 1970년대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선언과 함께 시작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년)은 한국 경제의 운명을 바꿨다. 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며 제조업 국가로의 극적인 변신에 성공했다.
80년대 들어서는 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 호황을 등에 업고 안정적인 고성장을 구가했다. 90년대에는 시장 자율과 개방을 골자로 한 자유화 정책을 통해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며 선진국 문턱까지 다가섰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한국 경제는 1997년 예기치 못한 외환위기를 맞으며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시련을 겪었다. 국가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국민과 기업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정보통신기술(ICT)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하고 IT 벤처 붐을 일으키며 단숨에 ICT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 1999년 11.7%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위기에서 탈출했다.
2000년대와 2010년대는 한국 경제의 황금기였다.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ICT 산업이 세계 시장을 제패했고, 자동차와 조선 산업도 글로벌 강자로 군림했다. 고부가가치 지식기반 산업으로의 전환에 성공하며 경제는 4~5%대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양극화라는 어두운 그림자도 짙어졌다.
2020년대 들어 한국 경제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은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키며 잠재성장률을 갉아먹고 있다.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중국 등 후발주자들의 거센 추격으로 흔들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AI, 휴머노이드 로봇,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 산업에서 뚜렷한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AI의 경우 2023년 기준 한국의 글로벌 AI 시장 점유율은 약 2.4%(그랜드뷰리서치) 수준에 그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테슬라(미국), 어질리티 로보틱스(미국) 등이 기술적으로 앞서나가고 있으며 한국은 현대차 그룹이 미국 기업이던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는 등 대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걸음마 단계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약 70%를 차지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미국, 대만 우위)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10년 넘게 약 3%대에 머물러 있다.
한때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빠른 추격자는 이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지만, 현실은 길을 잃고 뒤처지는 '느린 말'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위상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답습할 수 있다는 경고음도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만 머물러서는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만큼 세상에 없던 기술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선도자 모델’로의 대전환이 시급하다고 주문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초격차 기술로 성장을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경쟁자들이 추월하고 있어 새로운 성장 동력이 시급한 중대 시기”이라며 “정부가 AI, 휴머노이드로봇과 같은 신산업에 집중 투자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보다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신산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성장의 발목을 잡는 불필요한 규제에 대한 고강도 개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AI 등 신산업 분야의 연구개발(R&D) 지원도 대폭 늘려 민간의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