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기업 의도대로 소비 이뤄져
정보 습득·정치적 성향에도 영향력

#1. A씨(33·경기)는 쿠팡을 켜면 뭘 살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앱 메인 화면의 ‘다시 구매하세요’ 추천 목록 덕분이다. 13번 주문한 사과, 8번 반복 구매한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5회째 담은 곰곰 스테비아 대추방울토마토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상단에 뜬다. 예전 같으면 쇼핑을 할 때마다 제품을 검색해 브랜드를 비교하느라 시간을 들였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구매 이력과 패턴을 학습한 AI 알고리즘이 주기적으로 사는 품목을 먼저 제시해 준다.
#2. K씨(29·서울)는 출근길마다 유튜브 뮤직을 켠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직접 검색했지만 요즘은 앱이 띄워주는 추천 플레이리스트에서만 고른다. 플레이리스트에 자주 노출된 곡들이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 취향을 규정해 갔다. 영상 소비도 마찬가지다. 정치 관련 콘텐츠를 몇 차례 시청만으로 이후부터는 유사한 성향의 채널과 영상만이 상단에 배치됐다. 그는 음악과 영상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유튜브가 설계한 추천 경로 안에서만 소비하며 점점 길들여지고 있었다.
소비와 투자는 물론 취향과 정치 성향까지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다.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쿠팡·네이버 등 글로벌 플랫폼의 추천·검색 알고리즘은 단순한 취향 큐레이션을 넘어 일상적 소비와 정보 습득, 여론 형성과 정치적 가치관까지 움직이는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커머스 업계는 AI 기반 개인화 서비스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복 구매와 단골 고객 확보가 곧 수익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네이버가 AI 추천 기능을 강화한 ‘네이버플러스 스토어’에서는 재구매율과 단골 거래 비중 등 사용자 리텐션 지표가 뚜렷하게 개선됐다. 쿠팡과 11번가 역시 초개인화 추천을 통해 사용자가 언제 무엇을 필요로 할지 예측하고 이에 맞춰 상품 노출 순서와 방식을 실시간으로 조정한다. 겉으로는 소비자가 스스로 고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기업이 설계한 경로 안에서 소비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콘텐츠 소비 영역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된다. 닐 모한 유튜브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유튜브 이용자들의 시청 시간 70%는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밝혔다. 이용자는 취향에 따라 음악이나 영상을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상 플랫폼이 짜놓은 경로 안에서 소비가 이뤄지는 구조다.
알고리즘은 정치적 성향 형성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는 실제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플랫폼 X(구 트위터)에서 트럼프 후보 지지 게시물을 인위적으로 부스팅했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머스크가 트럼프 지지를 공식 선언한 이후 해당 게시물의 조회수와 리트윗 수가 급증하면서 알고리즘이 특정 정치 세력에 유리하게 작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틱톡은 중국 모기업인 바이트댄스가 알고리즘 기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내 틱톡 사용자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뉴스와 콘텐츠에 노출될 위험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2024년 미국 대선 국면에서도 틱톡에서의 정치 콘텐츠 확산력과 알고리즘 편향성 문제는 주요한 쟁점으로 부상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