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드론 비행에 영감 준 ‘잠자리 날갯짓’

입력 2025-09-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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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얼마 전, 소금쟁이의 움직임을 본뜬 작은 로봇이 개발돼 화제가 됐다. 가늘고 연약해 보이는 다리로 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모습 그대로를 옮겨온 듯했다. 사실 이런 ‘곤충 따라하기’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곧 가을 하늘을 수놓을 잠자리 역시 오랫동안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곤충이다. 요즘은 예전만큼 흔히 보기 어려워졌지만, 간혹 눈에 띄면 괜스레 반가워 따라가며 날갯짓을 지켜보게 된다.

잠자리의 비행은 곡예에 가깝다. 자유자재로 방향을 바꾸다 갑자기 멈춰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뒤로 나는 묘기도 선보인다. 어떻게 이런 묘기가 가능할까? 비밀은 날개에 있다. 잠자리는 앞뒤로 두 쌍, 네 개의 날개를 지녔다. 이들은 각각 다른 근육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앞뒤 날개를 독립적으로 조정하는 이른바 ‘위상차 날갯짓’이 가능하다. 앞뒤 날개를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젖히면 힘차게 전진하고, 서로 반대로, 예를 들어 앞날개를 위로 올리면서 동시에 뒷날개를 아래로 내리며 움직이면 공기 흐름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마치 두 개의 노를 상황에 맞게 조율하는 카약 선수와 같다. 덕분에 잠자리는 빠른 돌진과 정지, 후진까지 자유자재로 해낸다.

이 원리는 마이크로 에어로 로봇(MAV: Micro Air Vehicle) 개발에 적용됐다. 일반적인 프로펠러형 드론은 네 개의 날개가 같은 축으로만 돌아가, 바람에 흔들리거나 좁은 공간에서 방향 전환이 쉽지 않다. 하지만 잠자리처럼 앞뒤 날개를 ‘따로, 또 같이’ 조절하면 훨씬 안정적으로 뜨고 내릴 수 있다. 실제로 잠자리 날갯짓을 본뜬 초소형 드론은 오래 떠 있고, 갑자기 방향을 바꿔도 흔들림이 적다. 우리가 늘 보던 곤충이 사실은 미래 드론의 스승이었던 셈이다.

여름을 대표하는 곤충 중 하나인 매미 역시 놀라운 비밀을 숨기고 있다. 여름 내내 귓전을 울리는 요란한 울음소리가 먼저 떠오르지만, 정작 연구자들의 눈길을 끈 건 그 소리가 아니라 날개였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매미 날개 표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돌기들이 빼곡히 나 있다. 이 돌기들은 날개에 특별한 힘을 부여한다.

우선 날개가 물에 쉽게 젖지 않는다. 빗방울이 날개 위에 떨어지면 스며들지 않고, 작은 구슬처럼 동그랗게 맺혔다가 금세 툭 굴러 떨어진다. 왜 그럴까? 물방울이 표면에 달라붙으려면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치 작은 기둥처럼 솟아 있는 돌기들로 인해 물방울이 닿는 접촉 면적이 극히 좁아져 줄어든다. 때문에 물은 퍼져 붙지 못하고, 겉돌며 둥글게 뭉친다. 마치 기름칠이 된 프라이팬 위에서 물방울이 데굴데굴 구르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덕분에 매미는 비 오는 날에도 날개가 무겁게 젖지 않아 가볍게 날 수 있다.

날개의 돌기는 단순히 물만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균이 잘 달라붙지 못하게도 한다. 세균이 날개 위에 닿는 순간, 날카로운 돌기에 찔려 세포막이 손상된다. 마치 가느다란 바늘 위에 풍선을 얹으면 터져버리듯, 세균도 날개 표면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렇듯 매미 날개는 일종의 천연 살균 장치 역할도 한다.

이 원리는 이미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매미 날개를 모방한 소재는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도 세균을 억제할 수 있어 병원 기구나 식품 포장재에 응용될 수 있다. 또 발수 효과는 휴대전화 화면이나 자동차 유리에 적용된다. 손때나 물방울이 잘 묻지 않고, 묻더라도 금세 흘러내려 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한다. 우리가 매일 쓰는 물건 속에 매미의 날개가 숨어 있는 셈이다.

자연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실험실이다. 가을 하늘을 수놓는 잠자리의 날갯짓은 드론의 원리가 되었고, 여름을 떠난 매미 날개는 항균 소재와 방수 신기술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이처럼 길을 걷다 만난 곤충 한 마리, 그 작은 생명 속에 미래 과학의 아이디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일상이 조금 더 흥미롭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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