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함인희의 우문현답] 최초의 대졸 여성 공채 ‘뒷이야기’

입력 2025-08-3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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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명예교수/사회학

삼성보다 빨랐던 대우의 첫 시도
직급 오를수록 女비율 급격 하락
젠더갈등 극복…공정가치 세워야

삼성그룹 공채가 시작되었다. 삼성이 여전히 공채를 유지하는 배경으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로 상징되는 1993년의 신경영이 다시 소환되었다. 신경영 전략의 일환으로 ‘삼성직무적성검사’가 도입되었고, “여자 뽑아! 여자 뽑으란 말야!”를 외친 고 이건희 회장의 강한 의지에 따라 최초의 대졸 여성 공채가 시작되었다는 보도를 접했다.

대졸 여성 공채 과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세대로서 한 가지 팩트 체크를 한다면, 한국 최초의 대졸 여성 공채 기업은 삼성이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대우그룹이 맞다. 그것도 1981년에 실시했다. 연도를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는 그해 졸업과 동시에 나의 절친이 바로 그 공채에 합격해서 대우에 입사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공채 규모는 100명에 불과했지만, 여성의 취업이 학력 불문하고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비공개로 이루어지던 관행에 비추어보면 매우 신선하고 획기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대우의 야심찬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로 끝났다. 최초의 공채 입사 주인공 100명 중 90% 이상이 결혼(1981년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이 24.1세였다)을 이유로,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을 내세우며, 자신이 생각했던 직장생활이 아니라는 핑계 등으로 퇴사했다. 이듬해 대우는 대졸 여성 공채를 거둬들였다. 여성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를 발로 차버린 꼴이 되었는데, 대졸 여성 공채의 문이 다시 열리기까지는 1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삼성 입장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탐낸다면, ‘최초의 대규모 공채’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대졸 여성 공채의 확산과 함께 머지않아 여성 임원 비율이 두 자릿수에 이를 것이란 낙관적 전망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갔다. 파이프라인 이론을 앞세우며 당장은 승진 파이프라인상에 여성이 없지만 곧 여성들이 파이프라인에 들어오면서 차장 부장 임원을 순차적으로 채울 것이라 했다.

그로부터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공채로 삼성에 입사한 대졸 여성의 경로를 추적한 자료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이 없음은 아쉽다. 일부 유추할 만한 미발표 자료 중 2018년에 나온 세대별 여성 비율이 있는데, Z세대 54%, Y세대 34%, X세대 17%, B세대 6%로 밝혀졌다. 입사 당시엔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다소 높았지만, 직급이 올라가면서 여성 비율이 가파르게 하락하는 현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여성 채용에 관한 한 국내 기업 중 가장 모범적이란 평가를 받아 손색이 없을 삼성의 현주소가 이 정도다. 여성가족부의 여성관리자 패널 데이터를 보면 대졸 여성의 직장 내 현실은 훨씬 암울하다. 여성은 유리천장을 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과장급에서 차장급으로 승진할 때 가장 큰 폭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그 이유에 대한 분석은 이미 다양하게 나와 있다. 여성에게 불리한 조직의 관행 및 문화도 한몫하고 있고, 여성 자신의 ‘직업의식’ 및 선택 전략도 한계로 지목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20대 젠더 갈등의 실마리 하나가 잡히는 듯하다. 20대 남성은 남녀가 대등하게 경쟁하는 현실에서 남성에 가해지는 불리함(대학 성적 평점, 군복무 등)에 불만과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고, 20대 여성은 당당하게 경쟁을 뚫고 입사했는데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 많던 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묻게 되는 상황에 불안과 좌절을 느끼는 것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의 20대야말로 남녀가 진정한 동료로서 선의의 경쟁을 하며 멋진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손에 쥔 행운의 세대 아닐는지. 공존 공생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부상하는 갈등을 소모적이고 적대적인 갈등으로 치환하기보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사회의 엄혹함을 헤쳐 가며 공정의 가치가 지켜지길 갈망하는 20대를 응원하는 것이 기성세대 몫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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