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퇴직연금사업자들이 예금상품 만기 시 불리한 조건의 기존 예금을 재가입하도록 방치하거나, 확정기여형(DC) 장기 미운용자의 관리를 소홀히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양한 퇴직연금 상품을 추천하는 대신 계열사의 금융상품을 제시하고,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퇴직급여를 지급하는 등 불합리한 업무 관행을 벌여왔다.
31일 금융감독원은 총 45개 퇴직연금사업자에 대한 검사 결과 이처럼 다수의 부실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사업자들이 법이 규정한 ‘선관주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아 근로자의 퇴직자산이 불리하게 운용되거나 제때 지급되지 않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일부 금융사는 예금상품 만기 시 불리한 조건의 기존 예금을 재가입하도록 했다. 확정급여형(DB)을 도입한 회사는 대체로 예금 등 원리금보장상품에 가입하는데 기존에 가입한 상품보다 높은 금리의 유리한 상품이 있음에도 기존 상품에 재가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특히 50인 미만 영세 기업(74.8%)에서 두드러졌다.
또 확정기여형(DC) 장기 미운용자 관리가 소홀하고, 다양한 상품 대신 계열 금융사의 상품을 주로 권유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예를 들어 A금융사의 DB 퇴직연금에 가입한 사용자의 70%는 A금융사의 계열사가 발행한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적립금을 운용하고 있었다. A금융사의 계열사 상품이 타사상품보다 수익률이 매우 낮음에도 새로운 상품을 적극적으로 안내하지 않는 셈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 상품 제공을 차별하거나, 사용자 부담금 미납 관리가 부실한 경우도 적발됐다. DC형은 사용자가 연간급여의 12분의 1 이상을 부담금으로 납입하므로, 사용자의 부담급 납입을 제대로 확인하는 것은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와 직결된다. 이 밖에도 계약 이전 시 ‘실물이전’ 방식의 장점을 가입자에게 충분히 안내하지 않는 점, 퇴직급여를 근로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지급하는 등 불합리한 관행도 문제가 됐다.
금감원은 근로자 스스로도 퇴직연금을 지키기 위해 몇 가지 사항을 반드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용자의 부담금 납입 여부를 확인 △계약 이전 시 현금이전보다 실물이전을 고려 △상품 만기 시 단순 재예치보다는 다양한 상품을 비교·선택 등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또 퇴직한 회사에 지급 신청이 어렵다면, 근로자가 직접 퇴직연금사업자(금융회사)에 퇴직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는 점도 안내했다.
금감원은 이번 지적을 계기로 퇴직연금사업자가 근로자(수익자) 중심의 시장환경을 조성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퇴직연금사업자는 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근로자들도 제도와 상품 특성을 잘 이해해 자신의 노후자산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