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와 풋볼 선수 트래비스 켈시가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35살 동갑내기인 두 사람의 약혼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인기 최정상인 팝스타와 미국프로풋볼(NFL) 스타의 약혼이니 당연한 일이었는데요. 미국 동부 시간 기준 26일 오후 1시에 공개된 이 소식은 곧장 전 세계를 뒤집어놨습니다.
각종 포털 사이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검색어에 두 사람의 이름이 올랐고, CNN 등 주요 외신도 이 소식을 재빠르게 실어 날랐습니다. 크리스피 크림은 이날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을 무료로 증정하는 '프러포즈 링 기념 이벤트'를 진행했고요. 라이브쇼를 진행하던 한 방송인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더니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테일러 스위프트가 약혼했다"고 수차례 외쳤습니다. 한 대학교에서는 화학 과목 중간고사를 돌연 취소했죠. 교수가 "나도 집중하지 못하고 너희도 집중하지 못하니 모두 집에 가라"고 학생들을 풀어준 겁니다.
심지어 스위프트와 날을 세워온 '앙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 이날 기자들과 만나 “켈시는 훌륭한 선수이자 멋진 사람이며 스위프트도 훌륭한 사람"이라며 "그들에게 많은 행운을 빈다"고 덕담을 전했습니다.
두 사람의 약혼 소식과 함께 조명받은 건 스위프트 손가락 위의 반지입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약혼 소식이 전해질 때면 어김없이 반지가 화두에 오르는데요. 흥미로운 건 이런 반지 열풍이 벌어지는 시점에서도 다이아몬드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다이아몬드 가격이 떨어져도, 그 영원함의 상징성은 별개로 지속되는 걸까요?

아름다운 프러포즈 장소는 켈시의 집 뒷마당이었습니다. 싱그러운 나무와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영화 같은 현장이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그가 스위프트에게 끼워준 반지는 '영롱함' 그 자체였죠.
보그에 따르면 이 반지 디자인에는 켈시가 직접 참여했습니다. 아티펙스 파인 주얼리의 디자이너 킨드레드 루벡과 함께 반지를 디자인했다는데요. 모서리가 둥근 '올드 마인 브릴리언트 컷'의 다이아몬드가 큼지막하게 박힌 반지였죠. 옐로우 골드 밴드에 베젤 세팅으로 고정됐고 밴드 옆면에는 섬세한 각인이 새겨졌습니다. 컷(Cut), 캐럿(Carat), 투명도(Clarity), 컬러(Color) 등 다이아몬드 평가 기준이 되는 이른바 '4C' 요소를 모두 만족한 반지였습니다.
야후 라이프에 따르면 한 보석 전문가는 "테일러의 다이아몬드는 8~10캐럿 정도로 길게 늘어진 앤티크 쿠션 올드 마인 컷"이라며 다이아몬드의 가격을 40만~80만 달러(한화 약 5억5000만~11억9000만 원) 사이로 추정했습니다. 이 전문가는 "앤티크 보석은 복제할 수 없는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죠.
또 다른 주얼리 업체 관계자는 500만 달러(한화 약 69억 원)까지 가격을 불러 눈길을 끌었는데요. 독창적인 디자인, 상징성이 반영된 탓입니다.
스위프트와 켈시는 귀여운 러브스토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는 2023년 7월 켈시가 출연한 팟캐스트입니다. 당시 켈시는 스위프트의 콘서트장으로 찾아가 본인의 전화번호가 적힌 팔찌를 전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고백해 화제를 모았는데요. 그가 커다란 손으로 실에 비즈 하나하나를 껴넣는 사진도 공개되며 웃음을 자아낸 바 있습니다. 이후 그해 9월, 스위프트가 켈시의 NFL 경기를 직접 관람하는 모습이 목격되며 그들의 관계가 세상에 처음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본업에 충실하며 바쁜 일정에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응원을 받았죠.
앞서 약혼으로 화제를 모은 스타 커플은 또 있습니다.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연인 조지나 로드리게스에게 건넨 다이아몬드 반지 역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는데요. 사진만 봐도 무게를 짐작할 수 있을 법한 거대한 다이아몬드 반지였죠.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 반지의 다이아몬드가 15캐럿에서 최대 50캐럿에 이를 수 있으며 가격은 최소 200만 달러(약 27억7000만 원)에서 1500만 달러(20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주얼리 인플루언서 줄리아 샤페는 "이 반지를 매일 끼면 손가락 재건 수술이 필요할 것"이라며 "100파운드(45㎏)짜리 케틀벨을 손가락에 매달고 다니는 셈인데, 고통스럽지만 가치 있을 것"이라고 농담했습니다.
조지나가 반지 사진을 공개한 이후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등 숏폼 플랫폼에서는 관련 밈(meme)도 유행했습니다. 알루미늄 포일을 동그랗게 뭉쳐 손가락 위에 올려놓는 등 다이아몬드의 압도적인 크기, 영롱한 빛을 과장하며 재미를 준 밈이었죠.
또 셀레나 고메즈는 베니 블랑코에게서 받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공개했는데, 이는 20만 달러(약 2억7000만 원) 가격대로 추정됐습니다. 이밖에도 비욘세, 미란다 커, 블레이크 라이블리, 제니퍼 로페즈, 엠마 스톤, 아리아나 그란데, 로살리아, 헤일리 비버, 케이티 페리, 젠데이아 등 수많은 스타가 자신의 약혼반지를 공개하면서 화제를 빚어왔는데요. 모든 이들이 결혼에 골인한 건 아닙니다. 약혼 후 결별하거나 이혼한 경우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죠. 이럴 땐 반지를 돌려주는 게 일반적인 관례이자 또 법적 판례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주마다 차이가 있는 데다가 파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에 따라 반지 반환 여부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로 고가의 약혼반지를 두고 법적 분쟁도 빈번하게 발생한다네요.

톱스타들만 프러포즈 반지에 '억' 소리 나는 돈을 쏟아붓는 건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석 달 치 월급 정도 가격의 다이아몬드 반지로 프러포즈하는 게 일종의 관습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정작 글로벌 다이아몬드 시장은 침체 국면에 여전히 빠져 있습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하락했던 시세를 회복하던 것도 잠시, 2022년 하반기를 기점으론 국제 다이아몬드 시세가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요. 미국에 이어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 2위를 차지하던 중국에서 천연 다이아몬드 수요가 급감한 사실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됐습니다. 2013년 1346만 건에 달하던 중국의 혼인 건수는 지난해 610만6000건으로 10여 년 사이 반 토막 났는데요. 결혼 예물인 다이아몬드 수요가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여기에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랩그로운(Lab-grown) 다이아몬드의 성장도 천연 다이아몬드 산업에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랩그로운은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의 10~20% 수준이면서도 성분은 같은데요. 무장세력 자금 조달, 아동 착취 등 인권 문제는 물론 환경 파괴 논란을 꾸준히 빚은 천연 다이아몬드와 달리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대안'이라는 평을 받으며 점유율을 넓혔습니다. 이에 영원을 상징하던 다이아몬드의 이미지도 타격을 입었죠.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초고가 하이주얼리 시장은 오히려 더 활발하다는 겁니다. 크기·희소성·스토리텔링이 결합된 다이아몬드 반지는 여전히 확실한 상징성을 지닌 셈인데요. 조지나, 스위프트 등 셀럽들의 반지가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까지 추정치를 오가며 회자되는 것도 원재료의 가격보단 이들의 화제성과 서사가 더 중요한 영역임을 보여주는 사례인 거죠.

다이아몬드 반지가 여전히 약속의 상징으로 통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색다른 모습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벤트가 반지와 함께 소비되는 또 다른 상징이 된 모양새죠.
양수진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부교수 연구팀은 '소비자정책교육연구' 최신호에 게재한 '밀레니얼 청년들의 프러포즈 문화 속 명품의 의미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젊은 세대의 프러포즈 문화에 5성급 호텔과 명품 가방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습니다.
연구팀이 지난해 9월 1일부터 15일까지 '프러포즈'라는 태그가 달린 인스타그램 게시글 128개를 분석한 결과, 젊은 세대가 프러포즈 공간으로 가장 선호하는 장소는 호텔이 55건(42%)으로 가장 많았는데요. 38개 게시글은 호텔 정보를 명시했는데, 조사된 브랜드 19개 중 17개는 5성급 호텔에 해당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꽃과 실크 천 등으로 아름답게 꾸민 호텔 테이블 위 놓인 선물을 인증한 커플들의 게시물이 발견됩니다. 예쁘게 꾸민 호텔에서 반지 같은 명품 주얼리는 물론 명품 가방, 구두, 자동차 키 등을 선물하는 게 프러포즈 과정입니다.
한국리서치 '2025년 결혼 인식 조사'에서도 응답자 1000명 중 45%가 "프러포즈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18~29세 청년층은 그 비율이 55%로 다른 세대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30대(47%), 40대(39%) 등이 그 뒤를 이었는데요. 젊은 세대일수록 프러포즈를 중요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거죠.
결혼을 둘러싼 풍경은 문화권마다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다이아몬드 반지가 여전히 압도적인 약속의 언어로 작동합니다. 프러포즈 순간 무릎을 꿇고 반지를 건네는 장면은 영화 속 클리셰를 넘어 실제 일상에 뿌리내린 전통이죠. 반면 한국은 호텔·명품·이벤트가 반지와 함께 등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프러포즈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랑과 약속을 증명하려는 방식은 여전히 화려하고 강렬합니다. 반지이든 호텔이든, 결혼을 둘러싼 소비의 무대는 문화와 세대에 따라 달라지면서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셈인데요. '억' 소리 나는 프러포즈, 어떻게 생각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