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Purge or Revolution)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을 수용할 수 없고, 거기서 사업할 수 없다. 나는 새 대통령을 오늘 만난다.”
“한국의 새 정부가 최근 며칠 동안 교회에 대해 매우 잔인한 습격(vicious raid)을 벌이고, 심지어 군사기지에 들어가 정보를 수집했다고 들었다. 확인해 볼 것”
뜬금없는 숙청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가 정상회담 세 시간을 앞두고 트럼프의 SNS인 트루스쇼셜을 통해 튀어나오니 화들짝 놀랐다. 게다가 약속된 정상회담도 30분이나 늦어졌다. 이게 뭐지...? 하다가 브라질 사례가 떠올랐다.
트럼프는 앞서 쿠데타 혐의로 재판을 받는 ‘남미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르 전 브라질 대통령을 지원 사격하기 위해, 브라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트루스소셜에 브라질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잇달아 올린 바 있다. 트럼프도 우리 한국에 이 같은 내정 간섭을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생각까지 들었다. 틀림없이 특검 수사를 지칭한 것일텐데.
그런데, 정말 별일 없이 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별일 없이 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피스메이커가 되시고 저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에 트럼프는 빵~ 터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숙청' '혁명' '한국 교회와 미군 부대 급습' 발언에 대해 기자가 질문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 사안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자 트럼프는 "오해라고 확신한다"(I'm sure it was misunderstanding)라며 말 그대로 꼬리를 내렸다. 트럼프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오해나 실언을 인정하는 법이 없다. 2018년 러시아와 영국에 각각 한 번씩 사용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블름버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트럼프 마음 사로잡는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며 칭찬했다. 이재명이 트럼프를 향해 '매혹공격' (charm attack)을 펼친 것이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은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트럼프는 몰랐을까? 아니, 알았기에 써먹었다.
트럼프는 몰랐을까?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켜 쫓겨나고 지금 감옥에 가 있는 것이 혁명이니 숙청이니 말도 안 되는 사안이란 걸 트럼프는 몰랐을까? 트럼프가 진짜로 그렇게 믿었다면 CIA는 직무를 유기한 것이고, 트럼프는 이런 글도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트럼프의 완벽한 블러핑이다. 완벽한 국내 정치용 블러핑을 이런 식으로 써먹은 것이다.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 Conservative Political Action Conference)라는 조직이 있다. 행정부 내 인사까지 좌지우지할 만큼 트럼프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가의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 직후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접수했다. 끔찍한 일”이라는 근거 없는 ‘루머’를 퍼뜨렸다.
이 CPAC에는 고든창, 모스탄, 그랜트뉴셤, 애니챈 그리고 스티브배넌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극우주의자들이 즐비하다. 그랜트 뉴셤 CPAC 코리아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3500억 불 돈에 눈이 멀어서 이재명 대통령이 '반미'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고든창 변호사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SNS에 "트럼프 대통령께, 이재명(대통령)에게 그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고 말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또 "한국의 애국자들은 이제 한덕수를 보호해야 할 때"라고도 썼다.
특히 고든창 변호사는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이 '숙청 또는 혁명'을 언급한 SNS 글에도 댓글로 "감사하다"고 적었다. 이게 핵심 포인트다.
트럼프는 이들 CPAC에게 “봤지? 나 니네 말 잘 듣잖아~?”라며 국내 정치용 블러핑을 날린 것이다. 정보통신이 극도로 발달한 2025년 현재,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상황을 모를 수 있을까? 헬기가 국회에 군인들을 내려주고, 그 군인들이 시민들과 충돌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는데, 트럼프라고 이를 모를까? 오히려 이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하고 궁리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지지기반인 마가 세력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당신들과 언제나 함께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다 인식하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과시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필자도 모르게 탄식의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트럼프가 트럼프 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