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기프티콘 상품의 종류가 폭발적으로 다양해졌고, 지금은 안마의자나 숙박권까지도 선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선물은 호혜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내 생일에 축하 선물을 받으면, 친구 생일에 돌려줘야 할 의무가 생긴다. 또 다음 해 내 생일에 친구가 되갚으면서 주고받는 행위의 연쇄가 생긴다. 이때 상대보다 적은 금액으로 선물하기에는 미안하기 때문에 조금씩 더 비싼 선물을 주게 된다. 관계를 유지하는 비용이 점차 커진다. 기프티콘 문화가 도입되던 초기에는 가볍게 50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고받던 것이, 이제는 디저트가 함께 묶인 2인 세트 메뉴가 기본이다.
매년 똑같은 선물을 줄 수 없다는 부담감에 의해 선택한 다양한 상품들은 또 다른 딜레마를 낳는다. 안 먹는 영양제나 놓아둘 데 없는 인테리어 소품은 종종 받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짐이 된다. 쓰지도 않을 물건을 받으면서 부채를 쌓는 격이다. 반면, 생활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배달의 민족이나 올리브영 상품권 등은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실용적 선물에 속한다. 하지만 서로 비슷한 금액의 상품권을 주고받게 되면, 선물의 의미는 퇴색하고 ‘현금 교환’이나 다름없는 행위로 변질된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고대 사회의 선물 교환을 분석하며, 선물이 공동체를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선물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작동한다. 첫째, 주기(give).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내지 않는 것이 관계 단절의 신호가 되듯이, 상대방과 관계를 열고 유지하기 위해 선물을 주는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받기(receive). 선물을 받는 것은 관계를 인정하는 것이며, 거절은 우정을 끊어내는 신호가 된다. 셋째, 되돌려주기(reciprocate). 받은 사람은 일정한 시점에 답례해야 한다. 이는 관계의 균형을 회복하는 사회적 행위이다.
기프티콘은 플랫폼이 매개하는 디지털 증여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모스의 설명대로 이러한 행위는 사람들 간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공동체 결속의 장치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불필요한 소비와 피로를 유발하기도 한다. 모스가 언급한 북미 원주민의 전통 의례 ‘포틀래치(Potlatch)’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발견되는데, 부족장이 손님에게 음식과 선물을 베풀면 그 선물을 받은 상대 부족은 더 큰 포틀래치를 열어 체면을 세웠다고 한다. 즉, 서로의 체면과 관계를 지키려는 행위가 경쟁적 증여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기프티콘이 없던 시절에 우리는 더 많은 이들과 생일 축하 문자를 주고받았다. 특별한 날을 계기로 오랫동안 왕래가 없던 이들과 안부를 묻는 일은 즐거웠다. 그런데 지금은 기프티콘을 보내지 않을 거면(돈을 쓰지 않을 거면) 굳이 연락을 하지 않는다. 아무 선물도 없이 덩그러니 메시지만 보내는 게 겸연쩍기 때문이다. 선물보다 문장을 고르던 시절이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