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매직 왔다? 처서와 추분까지 밀린 이유 [해시태그]

입력 2025-08-08 16:59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진짜 입추 매직이 있나?”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렌드에 ‘입추 매직’이 떴는데요. 숨 막히는 더위를 예상하고 현관문을 열자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서늘한 온도. 생각지도 못한 상쾌함에 “이게 무슨 일이지?” 주변을 돌아본 이들이 많아진 거죠.

2025년 입추는 전날인 7일이었는데요. 24절기 중 13번째 절기인 입추는 ‘설 립(立)’에 ‘가을 추(秋)’ 자를 써서 문자 그대로 ‘가을이 들어선다’는 뜻입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절기상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죠. 하지만 입추가 가을 날씨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아직은 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계속되는 시기이기 때문인데요.


(조현호 기자 hyunho@)
(조현호 기자 hyunho@)


올해 6월부터 시작된 폭염은 유례없을 만큼 강렬했습니다. 지난달 21일부터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4~38도에 달했고 이어 27일과 28일에는 최저기온이 각각 29도, 30도에 육박했는데요. 열대야도 심각했죠. 서울은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5일까지 22일 연속 열대야가 나타났고 1일에는 밤사이 최저기온이 30도를 넘겨 ‘초열대야’로 분류됐습니다. 이는 서울시 열대야 관측 사상 최장 기록이죠.

그러던 중 입추가 찾아온 건데요. 입추 이틀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최저기온은 28도를 웃돌았지만, 입추 당일엔 26.5도로 살짝 내려갔습니다. 다음 날인 8일에는 23도까지 떨어지자 SNS에는 ‘입추 매직’이란 단어가 언급된 거죠. 올여름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끄고 잠을 잤다는 후기가 쏟아진 건데요. 비록 낮 기온은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계속됐지만 아침과 저녁만이라도 약간의 시원함을 느낀 이들의 ‘감탄사’였습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조현호 기자 hyunho@)


‘입추 매직’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건 2020년 즈음인데요. 포털 검색 트렌드와 SNS 데이터에 따르면 ‘입추 매직’은 입추 전후 체감 기온 변화에 대한 밈(meme)처럼 사용됐죠. 입추를 전후해 최저기온이 약간 떨어지면 “입추 매직 통했다”, 반대로 더우면 “입추 매직 망했다”는 식의 밈으로 소비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 표현이 유행한 시기와는 달리 실제 기온 변화는 점점 입추 시기를 무시하고 있죠.

기후변화가 절기의 기능을 흔들고 있는 건데요. 기상청에 따르면 한반도 평균기온은 1912년부터 약 1.6℃ 상승했죠. 이는 세계 평균 상승치보다 빠른 속도인데요. 같은 기간 폭염일수는 두 배 이상 늘었고, 열대야는 특정 지역에서 연간 40일을 넘겼습니다. 특히 1970년대 대비 2020년대 여름의 길이는 평균 98일에서 118일로 약 20일 연장됐는데요. 겨울은 평균 22일 짧아졌고 봄은 17일 빨라졌죠. 이 같은 현상은 사계절의 균형을 흔들었고 더 나아가 ‘가을’이라는 계절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신태현 기자 holjjak@)


사계절 길이 자체가 달라진 탓에 ‘입추 매직’이 체감되던 시점도 뒤로 밀리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입추가 지나면 밤바람이 달라졌고 처서(8월 23일) 무렵이면 “이제 여름 끝”이란 말이 통했죠. 하지만 2023년엔 추분 이후까지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이 계속됐는데요. 작년에는 9월 둘째 주까지 열대야가 이어졌죠.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상청 기후분석에 따르면 북태평양 고기압의 북상과 열대 해수면 온도 상승 영향으로 9월 초까지 폭염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는데요. 서울시와 대전시 등은 15일까지 폭염 대응체계를 유지할 방침이며 이는 평년보다 23주 늦은 조처죠.

실제로 올해 입추에도 낮 기온은 여전히 30도 안팎이었습니다. 최저기온이 떨어지면서 달콤한 상쾌함을 느끼고 있지만 기온이 하루 이틀 떨어졌다고 해서 기단이 바뀌었다고 보긴 어려운데요. 입추 무렵의 선선함은 기후적 변화라기보다 심리적 효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시원함’이 고픈 이들은 ‘입추 매직’이 안되면 ‘처서 매직’을, ‘처서 매직’이 들지 않으면 ‘추분 매직’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그만큼 가을은 늦어지고 여름은 길어지는 것을 그 어떤 분석보다도 시민들의 ‘계절 밈’을 통해 알 수 있죠.


(고이란 기자 photoeran@)
(고이란 기자 photoeran@)


이른바 ‘계절 시차’, 해는 짧아지는데 더위는 그대로인데요. 입추, 처서, 추분처럼 우리가 계절의 기준으로 삼았던 절기들이 더는 심리적 기준으로 작용하지 못한다는 점이죠. “이쯤 되면 선선해지지 않을까”라는 희망 섞인 기다림이 만들어낸 감각의 산물입니다.

그렇다고 절기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은 아닙니다. 절기는 여전히 농사나 생활 리듬의 기준이 되죠. 다만 체감상 계절 변화와의 간극이 커지면서 절기와 현실이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 강해진 건데요. ‘입추 매직’은 단지 기후 변화에 대한 반응이자 사람들의 기대감이 만든 심리적 표현인 셈이죠.

입추도, 처서도, 추분도 더위의 ‘끝’이 되지 못하는 시대. 절기는 제자리에 있지만, 계절은 점점 더 늦게 도착하고 있는데요. 체감과 절기, 통계와 심리가 서로 어긋나는 요즘, 올해 ‘진짜 매직’은 언제일까요?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달러가 움직이면 닭이 화내는 이유?…계란값이 알려준 진실 [에그리씽]
  • 정국ㆍ윈터, 열애설 정황 급속 확산 중⋯소속사는 '침묵'
  • ‘위례선 트램’ 개통 예정에 분양 시장 ‘들썩’...신규 철도 수혜지 어디?
  •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 62%…취임 6개월 차 역대 세 번째[한국갤럽]
  • 겨울 연금송 올해도…첫눈·크리스마스니까·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해시태그]
  • 대통령실 "정부·ARM MOU 체결…반도체 설계 인력 1400명 양성" [종합]
  • ‘불수능’서 만점 받은 왕정건 군 “요령 없이 매일 공부했어요”
  • 오늘의 상승종목

  • 12.05 장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