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이런 비전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 있다. 일론 머스크의 엑스프라이즈재단 상을 받은 이수인 에누마 대표는 아들의 장애를 계기로 ‘맞춤형 교육’인 토도수학 앱을 만들었다. 탄자니아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속도에 맞춘 교육 앱을 만든 그의 도전은 인공지능(AI) 교과서 검정 통과로 이어졌다.
그런데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AI 디지털 교과서(AIDT) 정책이 사실상 좌초 수순을 밟게 됐다. 국회 본회의에서 디지털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됐다. 여러가지로 촉박한 도입 일정, 허술한 데이터 관리 등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만큼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이 대표도 ‘여기까지였나 봅니다’라며 SNS 포스팅을 했다.
하지만 장애 학생의 부모인 나는 이 대표가 자신의 삶과 사업, AIDT를 통해 구현하려 했던 미래 교육의 가치마저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육현장에서 장애 학생을 둘러싸고 교사들이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개별화교육계획(IEP)’다. 이해도가 떨어지는 발달장애 학생을 특수반에 데려다 놓고 보육만 시키는 게 학교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특수교사 말고 모든 교사들에게 이런 맞춤형 수업 커리큘럼 디자인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를 준비하기 버거워한다. AIDT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이 대표는 원래 ‘공교육의 실패율을 낮추고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교육을 전파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에 뛰어들었다. 도파민에 중독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새로운 교육 방식이 필요하고 장애학생뿐 아니라 계속 늘어나는 이주 배경 학생을 위한 번역이 포함된 맞춤형 교육도 그의 시야에 있었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접근성 정책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보냈던 김헌용 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의 목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시각장애인 교사인 그는 AIDT 도입이 성급했다고 지적하면서도, AIDT 도입 계기로 교육부 가이드라인에 유니버설 디자인과 웹 접근성이 명시된 점, 그리고 접근성 테스트 랩이 도입된 점에 대해서는 “기념비적인 일”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디지털 기술은 단순히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고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도록 사용할 수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좌절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수인 대표가 꿈꿨던 ‘500만 명을 위한 500만 개의 교과서’라는 비전과 김헌용 위원장이 이야기한 ‘모든 학생을 위한 포용적인 교육’이라는 가치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책은 실패했을지라도, 이 두 교육 전문가의 이야기는 미래 시대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단순히 ‘전 정부의 정책이라서 전면 폐기’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현 정부의 교육 정책이 모든 학생을 다 끌어안고 갈 수 있는 포용적 정책 방향으로 움직이길 바라며, 그 과정에서 이미 현실이 된 디지털 기술을 스마트하게 도입하는 건 필수불가결해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