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배의 금융의 창] 부채를 줄이는 세 번째 축 ‘소비정책’

입력 2025-08-0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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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평가연구원 비상근연구위원·금융의 창 대표

소득·대출 관리 통한 빚대응 ‘한계’
소비구조 방치해선 부채 막지못해
개인재정위기 다룰 정책접근 시급

정부는 매년 가계부채를 걱정하며 대출 규제를 강화해 왔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소위 ‘대출 총량 규제’ 아래 금융기관의 문턱은 높아졌고, 이제는 고신용자조차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시대다.

이재명 정부도 이 기조를 이어가며 일부 고위험 대출상품을 제한하고, 전세자금대출도 선별 규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소득을 늘리고 대출을 조이는 투트랙 전략, 즉 소득과 대출이라는 두 축을 통해 부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채를 만드는 또 다른 축, 소비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대출은 줄이고 소득은 늘리겠다는 대책은 있었지만, 소비 구조에 대한 정책적 접근은 전무하다. 이는 특정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역대 정부 모두가 소비를 개인의 자유 영역으로 보고 시장 자율에 맡겨왔다.

하지만 부채는 소득과 소비의 함수다. 소득이 부족하거나 소비가 과도하면,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대출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소비라는 세 번째 축을 본격적으로 다뤄야 한다. 이는 단순히 소비를 억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소비 기반을 통해 개인과 국가 재정을 함께 회복시키자는 제안이다. 잘못된 소비 습관을 교정해 건전한 재무 구조를 만드는 접근이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소비는 더 이상 온전히 개인의 자율이 아니다. 소비는 구조화되고 유도된다. 청년층은 고정비 지출의 늪에 빠져 있다. 주거비, 통신비, 교통비, 교육비 등 대부분 선택이 아닌 필수다. 30~40대는 자녀 교육비와 자산 취득 사이에서, 중장년층은 건강관리와 노후 준비 사이에서 소비 압박을 받는다.

그 위에 겹쳐진 것이 ‘모방 소비’와 ‘소비 양극화’다. SNS로 확산되는 타인의 라이프스타일은 비교와 경쟁을 유발하며, 소득 수준과 무관한 소비를 부추긴다.

‘지름신’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쓰이고, 소비가 유희가 된다. 여기에 신용카드 리볼빙, BNPL(선구매 후지불), 고금리 캐피털 대출이 결합되며 소비가 부채로 직결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소비 구조는 갑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3~1997년 5년간 에너지, 로열티, 해외여행, 사치성 소비재 수입 등으로 2000억 달러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이는 당시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초과하는 과도한 소비였고, 결국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이후 20년 넘게 지났지만 ‘지름신’ 문화는 여전하다. 코로나19 이후 ‘보복 소비’가 유행했고, 경기 침체 속에서도 명품 소비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해외 카드 사용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소비의 양극화다. 중하위 계층은 식비와 난방비마저 줄이는 반면, 고소득층은 해외 명품과 고급차, 골프여행에 지출을 늘리고 있다.

이는 단지 소비 불균형이 아니다. 사회적 위화감은 물론, 상대적 박탈감, 왜곡된 신용과 부채 인식을 낳는다. 사치와 과시 소비가 일상이 되면 누구나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시도하게 되고, 그 결과는 ‘숨은 부채’의 폭증으로 나타난다. 물론 자산 투자도 원인이지만, 과소비 역시 핵심 축이다.

청소년과 청년층에게도 이 소비 구조는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SNS 속 명품 인증, ‘플렉스’ 콘텐츠는 과소비를 성공의 상징처럼 각인시킨다. 청소년은 충동구매 성향이 강하고 모방 소비에 쉽게 노출된다. 그러나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의 소비행태, 기업의 마케팅, 교육 부재가 함께 만든 구조다. 소비는 학습되며 유도된다. 지금의 소비 의식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정부는 소비 구조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청년 소비 진단 시스템도 없고, 생애주기별 소비 교육이나 상담 창구도 거의 없다.

정책이 소비를 ‘중립적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소비는 더 이상 중립이 아니다. 플랫폼 알고리즘, 광고 추천, 금융 상품은 소비를 유도하고 조작하며 특정 방향으로 몰아간다. 소비는 철저히 설계되어 있고, 방치된 소비는 부채로 이어진다.

이제는 부채 논의의 세 번째 축에 ‘소비’를 포함시킬 때다. 금융 규제만으로는 개인의 재정 위기를 막을 수 없다. 소비 구조 개혁이 빠진 부채 정책은 반쪽짜리 대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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