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서를 만드는 기업은 더 이상 센서 제조에 머무르지 않는다. 공장설비나 기계에 부착된 센서가 금융권에서는 매우 유용한 데이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금융 대출로 마련된 기계 설비에 부착된 센서는 기업 부도율을 예측하는 정보를 제공하여 데이터 플랫폼의 단말기가 되고 있다. 센서는 더 이상 단순한 부속품이 아니라 데이터 플랫폼의 촉수가 된 것이다.
비파괴검사 측정 장비를 제조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장비를 만들어 파는 걸 넘어, 검사측정 데이터를 축적하여 설비의 기대수명이나 노후화 등 사고 가능성 예측에 대한 데이터를 생성·제공하고 있다. 노후된 가스관이나 저장설비의 상태를 측정해 주는 것은 마치 우리가 건강검진을 받고 축적된 데이터를 통하여 사전에 병을 예방하는 것과 같다. 산업시설에도 건강상태 지도를 제공하는 데이터 비즈니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AI 시대가 확산됨에 따라 데이터 비즈니스가 비교경쟁력이 될 것이다. 데이터를 얼마나 잘 모으고, 잘 관리하고, 잘 분석하느냐가 결국 경쟁력의 차이를 만든다. 왜냐하면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즈니스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산업의 생산성을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주위를 살펴보면, AI 시대에 걸맞은 데이터 경제로의 질적 전환이 생각만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우선 미국은 이미 데이터 플랫폼 허브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으며, 글로벌 비즈니스를 주도하기 위한 데이터 시스템을 착실히 연결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은 AI 시대를 선도하는 미국 데이터에 힘입어 강력한 데이터 비즈니스와 경제를 이끌어 갈 것이다.
중국은 15억이라는 거대 인구 규모를 바탕으로 이제는 첨단산업과 핵심기술에 AI를 탑재하여 단일 경제권 데이터망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과거 산업시대에 뒤처졌던 중국은 AI 시대에는 데이터 비즈니스와 경제에서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5000만 인구의 데이터로는 AI 시대를 주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데이터의 질적 수준은 차치하더라도, 양 자체가 모자란다. 결국 우리 국민경제 규모만으로는 AI 시대의 데이터 비즈니스를 펼치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본 경제의 데이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 시대에 필연적으로 적용될 데이터 비즈니스와 경제를 실현하려면, 최소한 일본 수준의 경제 규모와 질 높은 산업 데이터를 우리가 축적한 데이터와 결합해 함께 작동시켜야 한다. 물론 일본은 우리보다 경제 규모도 크고 산업 강국으로서의 경험과 역량이 풍부하다. 그렇기에, 한국과 일본의 데이터가 만났을 때 시너지는 훨씬 더 크고 강력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역시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데이터 비즈니스와 데이터 경제를 선도해 나가기에는 미국과 중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 역시 AI 시대에 걸맞은 데이터 기반 산업 및 경제 구조로 전환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 입장에서도 우리나라처럼 급속히 산업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데이터는 매우 긴요하다.
한일 양국이 보유한 산업 역량과 시스템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 허브를 통합하고 연계해 나갈 수 있다면, 유럽을 넘어서는 새로운 데이터 비즈니스 모델과 경제 구조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야말로, 미국과 중국에 근접한 글로벌 빅3 수준의 AI 데이터 비즈니스와 데이터 경제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AI 시대에 미중에 견줄 만한 데이터 경제권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한국도 일본이 절실히 필요하고, 일본도 한국과 함께 연계된 데이터 경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AI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AI 시대의 데이터 비즈니스와 경제를 우리가 어떻게 주도할지 분명히 짚어보아야 한다. 우리 5000만 인구의 데이터만으로는 데이터 플랫폼 허브의 비전을 실현할 수 없다. 그래서 1억 명이 넘는 일본 데이터와의 연결이 필수불가결하다. 그것이 우리가 일본과 데이터 경제동맹을 맺어야 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