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품은 일단 사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기 명품 브랜드 제품에 대해서는 '일단 사라'는 조언이 나오곤 했습니다. 명품 브랜드들이 매년 가격을 올리는 만큼 '지금 사야 가장 저렴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는데요. 이것도 이젠 옛말일까요. 명품 브랜드들이 간과하지 못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아무리 가격을 올려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던 그 브랜드들이 매출에 타격을 입은 건데요. 루이뷔통(루이비통)은 물론 디오르(디올), 몽클레르(몽클레어) 등 명품 중 명품이라고 불리던 그 브랜드들도 매출 부진의 늪에 빠져 충격을 자아냈죠. 이들 브랜드는 매출 하락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밝혔지만 소비자들의 시선은 심상치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가격 인상에 대한 업보 빔을 맞은 것'이라는 비아냥도 흘러나와 궁금증을 더합니다.

최근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잇따라 매출 둔화를 겪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루이비통, 디올 등을 보유한 프랑스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인데요. 지난주 발표된 올해 상반기 실적에 따르면 LVMH의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했고 순이익은 무려 22% 줄어들었습니다. 프랑스 증시에서는 올해 들어 주가가 23%가량 하락했죠.
특히 패션 및 가죽 제품 부문 역성장이 뼈아팠습니다. 해당 부문의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줄었는데요. 이는 LVMH에서 가장 큰 부문이자 브랜드 정체성을 대표하는 핵심 라인입니다.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라인의 침체는 곧 성장 정체 우려와도 연결되죠.
이탈리아의 몽클레르도 예외는 아닙니다. 24일 공개된 2분기 실적에서 몽클레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죠.
실적 발표를 앞둔 곳들도 전망이 밝지만은 않습니다. 구찌,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을 보유한 케링그룹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2% 감소한 172억 유로, 영업이익도 46% 감소한 25억5000만 유로, 순이익은 62% 감소한 11억3000만 유로를 기록했는데요. 월가에서는 올해 2분기 매출도 17%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 중이죠.
이들 브랜드는 매출 둔화를 '일시적 조정'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도 실적 발표 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실적 부진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본다고 평가했지만 투자자들의 시선은 사뭇 달랐는데요. 글로벌 투자은행인 UBS는 투자자들이 지난 2년간 유럽 명품 업체들의 실적 회복을 기다려왔다며 "투자자들이 명품 업계의 장기적으로 구조적인 매력도 변화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고 짚었죠.

명품 업체의 저조한 실적과 관련해서는 중국 시장의 침체가 주원인으로 거론되곤 합니다.
LVMH의 전체 매출에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30%에 달했는데요. 중국의 경기 침체로 고급 소비재 수요가 감소하면서 타격을 입었습니다. 전체 매출에서 아시아 지역의 비중도 올해 상반기 28%까지 떨어졌죠. 같은 기간 일본 매출 비중도 기존 대비 1%포인트(p) 하락한 8%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의 관세 문제까지 겹치면서 명품 소비가 더 둔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습니다.
눈길을 끄는 건 과도한 가격 인상으로 명품 업체들이 MZ세대의 눈 밖에 났다는 분석입니다.
실로 명품 업체들은 셀 수 없이 가격을 올려왔는데요. 루이비통만 하더라도 지난해 7월, 올해 1월, 4월 등 일부 가방 제품 가격을 올렸습니다. 일례로 올해 1월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 캐리올 PM과 캐리올BB 제품 가격이 13% 이상 인상돼 기존 367만 원에서 415만 원이 됐습니다. 디올도 지난해 1월, 올해 7월 등에 걸쳐 일부 주얼리, 가방 제품 가격을 인상한 바 있습니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대형 럭셔리 브랜드가 소규모 신생 브랜드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는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는데요. 다만 WSJ는 명품 업체들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핸드백 가격을 공격적으로 인상한 가운데 소비자들은 더 나은 가성비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영역으로 고개를 돌렸다고 평가했죠.
가격에 미치지 못하는 품질도 소비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습니다. 디올의 '원가 8만 원' 가방이 대표적인데요. 지난해 6월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당시 약 385만 원에 팔리던 디올 핸드백 원가가 8만 원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겼습니다. 게다가 밀라노 법원이 중국인 소유 하청업체 4곳을 조사한 결과, 이곳에서 가방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밤샘 근무, 휴일 근무 등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해당 공급 업체는 불법 이민자 등을 고용했고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 기계 안전장치도 제거했죠.
이달에는 로로피아나가 비슷한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카라비니에리 경찰은 로로피아나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한 공급 업체에서 불법 이민자 5명을 포함한 중국인 노동자 10명이 주 7일, 주당 최대 90시간 강제 노동을 한 것으로 파악했는데요. 시급 4유로(약 6500원)를 지급한 데다가 이들이 공장 내에 불법으로 설치된 방에서 잠을 잤다는 사실도 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공교롭게도 로로피아나 역시 LVMH의 계열사입니다.
여기에 고객 정보 관리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지난달 디올과 티파니앤코, 카르티에(까르띠에), 루이비통이 해커들의 공격을 받아 고객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가격은 명품, 보안과 대응은 짝퉁'이라는 비난도 나왔죠.
명품 업계의 공격적인 가격 인상은 물론 윤리적 문제와 사고 대응 방식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널리 공유되면서 젊은 소비자들 사이 명품 브랜드에 대한 매력도가 떨어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요. 고물가 시대, 브랜드 로고보다는 가격 대비 만족도에 주목하는 가치 소비가 이어지면서 '듀프(Dupe) 소비' 열기가 꺼지지 않는다는 점도 명품 인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브랜드도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섰습니다. 초고가 시그니처 라인 제품 판매에 주력할 뿐 아니라 할리우드 스타부터 K팝 아이돌까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셀럽들을 브랜드 얼굴로 내세우고, 보유 브랜드 매각까지 검토 중이죠.
무엇보다 리더십 교체가 관심을 끕니다. 케링그룹은 자동차 기업 르노의 CEO인 루카 데 메오를 새 CEO로 전격 영입하는데요. 20년간 그룹을 이끌어온 창업주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비명품' 업계 출신 외부 인사가 수장에 오르는 파격적인 인사입니다. 그만큼 실적에 관한 위기감과 타개 의지가 있다는 거죠.
또 케링그룹의 구찌는 올해 1월부터 스테파노 칸티노가 이끌게 됐는데요. 그는 스타 디렉터 뎀나 바살리아를 구찌의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로 앉혔습니다. 뎀나는 메종 마르지엘라, 루이비통 등에서 경력을 쌓은 뒤 자신의 브랜드 베트멍을 론칭,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면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인물인데요. 스트리트, 해체주의적 요소를 강렬히 선보여온 뎀나인 만큼 구찌의 부활에도 기대가 모이는 상황입니다.
LVMH는 마크 제이콥스 매각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25일 WSJ에 따르면 LVMH는 스포츠 브랜드 리복을 보유한 어센틱 브랜즈 그룹을 포함한 복수의 잠재적 매수자와 마크 제이콥스 브랜드 매각 방안을 논의 중인데요. 최근 그룹 전체의 매출 감소로 경영 위기가 커진 가운데 나온 보도라 눈길을 끌죠.
이처럼 명품 업계는 구조 자체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새로운 리더를 기용하고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며 초고가 고객 맞춤 전략을 강화하는 거죠.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실질적인 반등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입니다. WSJ는 글로벌 주요 명품 업계 규모가 10년 전과 비교해 50% 더 커졌다며 "새 디자이너들이 젊은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다 해도 주주들이 익숙해진 과거와 같은 속도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는데요.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고 소비자는 더 까다로워졌습니다. 세계 시장도 관세, 물가, 지정학적 문제 등으로 더욱 복잡해지고만 있죠. 결국 명품의 미래는 "이 브랜드를 소유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에 달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