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경영직설] 세계 민속축제장이 된 오사카 엑스포

입력 2025-07-23 20:23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새문물 경험에 설렘안고 찾은 현장
신기술은 없고 각국 풍물만 펼쳐져
산업화시대 상징공간 종막 보는 듯

햇살이 따가운 6월 말 오사카 유메시마 섬에 위치한 엑스포로 가는 발걸음은 호기심과 기대로 들떠있었다. 개인적으로 엑스포 관람은 1993년 대전 엑스포에 이어 두 번째이다. 당시에 평생 처음 접한 3D 입체 아이맥스 영화, 360도 파노라마 스크린, 자기부상열차, 사물놀이 로봇, 실물 홀로그램, 가상현실체험은 충격적 경험으로 그 여운이 오래 남았었다. 이제 한 세대의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가보는 엑스포에서 어떤 새로운 미래 문물을 경험하게 될지 설렘을 품고 오사카를 방문했다.

오사카 엑스포 입구에 다가가며 가장 먼저 보이는 건축물은 나무로 만든 원형 울타리인 그랜드 링(Grand Ring)이다. 일본의 전통 목조건축술을 집대성해 목재로만 짜 맞춘 그랜드 링은 둘레가 2km로 엑스포 전시관들을 품에 안듯이 감싸고 있다. 최대 높이 20m에 폭이 600m가량으로 상단에는 엑스포 행사장 전체를 내려다보며 산책하고 쉴 수 있는 널찍한 통로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그랜드 링은 너무 웅장해 엑스포 공간 전체를 압도한다. 어디를 다니건 그랜드 링을 안 볼 수 없다. 뙤약볕을 피해 그늘을 찾아 들어가는 곳도 그랜드 링이다. 그러니 관람을 마친 뒤에도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그랜드 링뿐이다. 그랜드 링 하나만으로도 오사카 엑스포 관람의 가치가 있으니 상징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였다.

또 다른 볼거리는 각국의 고유한 특색을 자랑하며 건축미를 뽐내는 국가관 파빌리온이다. 세계 158개국이 참가했는데 국력에 따라 국가관의 규모와 구조가 차이 난다. 가장 규모가 큰 중국관은 ‘죽간’(대나무 서책) 두루마리가 펼쳐진 형상을 띤 거대한 곡선형 외벽이 중국 문화의 위세를 과시했다. 오스트리아관은 오스트리아산 목재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 악보를 형상화한 나선형 조형물을 설치해 음악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스페인관은 태양이 떠오르는 지중해 바다를 연상하는 계단식 광장 구조로 외관을 장식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포르투갈관은 선박에서 사용하는 밧줄과 어망으로 건물을 감싸 대항해시대 탐험의 나라임을 나타냈다. 우리나라를 제치고 2030년 엑스포 개최국으로 선정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관은 사막 도시와 마을을 상징하는 흰색 석조건물들을 모아 놓아 규모만 컸을 뿐 특색이 없었다.

한국관은 건물 외부에 대형 미디어 파사드(27m x 10m)를 설치해 문화유산과 사계절 자연의 국토를 디지털 동영상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줘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대부분의 국가관이 정적 요소인 건축물을 강조하는 가운데 한국관이 첨단 기술로 역동적 이미지를 앞세운 것은 차별적으로 돋보였다.

요란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아쉽게도 화려한 건물 외관 안에 전시된 물건이나 콘텐츠는 평이하기 짝이 없었다. 주최국인 일본은 ‘생명의 순환, 그 사이에서’라는 주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물이나 자원을 재생하여 재활용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어린이 과학관’을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미국관의 구호는 ‘함께 창조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Image what we create together)인데 그 내용은 빈약했다. 우주선 발사대 아래에서 화염을 뿜고 솟구치는 로켓을 보여주는 영상은 유튜브보다 못했다. 가장 많은 돈을 들이고 가장 화려하여 최고 인기를 누리는 프랑스관은 잡탕의 관광홍보관에 불과했다. 특별한 주제 없이 로댕의 손을 비롯해 루이뷔통 가방과 디오르 패션 등의 프랑스 문화, 예술, 패션을 한자리에 모아 놓아 프랑스 관광 욕구를 자극하는 공간이었다. 독일관 옆에 설치된 독일맥줏집은 전시장보다 더 많은 인파를 끌어모았다. 찌는 더위에 맥주로 목을 축이려면 1시간 이상 대기해야 한다. 그 외 아일랜드와 같은 군소국가의 전시관은 자국의 풍물, 전통문화, 민속춤을 소개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하루 동안 오사카 엑스포 전시장을 둘러보며 인상 깊게 경험한 것은 장대하고 독특한 건축물뿐이다. 마치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호텔 건물들이 밀집한 스트립을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을 대기하며 입장해 구경할 만한 곳은 드물었다. 대다수 국가관은 일본인 대상으로 자기 나라의 이미지와 문화를 알리는 홍보에 치중하였다. 각 국가관의 외국인 안내원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였다. 미국관의 백인 안내원이 매끄러운 일본어를 뽐내며 자기는 일본에 처음 왔는데 일본어 솜씨 어떠냐고 물으면, 일본인 관람객들은 박수하며 환호하였다. 당연히 관람객은 온통 일본인뿐이었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외국인이 이 정도 건축물과 전시장을 직접 보기 위해 오사카까지 올 이유는 별로 없었다.

이제 엑스포는 미래기술을 보여주기에 낡은 매개체가 된 것 같다. 요즘 신기술은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진다. 오사카 엑스포가 ‘인간과 환경’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내건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새롭게 보여줄 미래기술이 없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주최국 국민을 위한 세계 민속축제로 전락한 엑스포는 조만간 역사의 유물로 사라질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엑스포를 부산에 유치하겠다고 온 나라가 야단법석 떤 것이 허탈하게 느껴지고, 선정되지 못한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달러가 움직이면 닭이 화내는 이유?…계란값이 알려준 진실 [에그리씽]
  • 정국ㆍ윈터, 열애설 정황 급속 확산 중⋯소속사는 '침묵'
  • ‘위례선 트램’ 개통 예정에 분양 시장 ‘들썩’...신규 철도 수혜지 어디?
  •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 62%…취임 6개월 차 역대 세 번째[한국갤럽]
  • 겨울 연금송 올해도…첫눈·크리스마스니까·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해시태그]
  • 대통령실 "정부·ARM MOU 체결…반도체 설계 인력 1400명 양성" [종합]
  • ‘불수능’서 만점 받은 왕정건 군 “요령 없이 매일 공부했어요”
  • 오늘의 상승종목

  • 12.0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5,405,000
    • -1.93%
    • 이더리움
    • 4,657,000
    • -1.71%
    • 비트코인 캐시
    • 863,000
    • -0.29%
    • 리플
    • 3,087
    • -3.38%
    • 솔라나
    • 203,900
    • -4.09%
    • 에이다
    • 641
    • -3.75%
    • 트론
    • 424
    • +0.95%
    • 스텔라루멘
    • 372
    • -1.33%
    • 비트코인에스브이
    • 30,800
    • -1.44%
    • 체인링크
    • 20,860
    • -2.84%
    • 샌드박스
    • 217
    • -3.98%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