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라는 그릇된 인식에 발전 못해
영리병원·대학 등록금 발상 전환을

영국의 저널리스트 ‘에드 콘웨이’가 쓴 ‘물질의 세계(Material World)’라는 책을 보면 미국에서 생산하는 5달러 중 4달러가 서비스 부문에서 나오고 나머지 1달러가 제조업 등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서비스 산업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영어로 하면 물은 ‘셀프’가 되고 중국집 군만두는 ‘서비스’라는 우스갯소리가 한때 유행했었다. 여기서의 서비스는 공짜라는 개념이다. 뭐든 공짜면 귀한 대접을 못 받고 발전이 없다.
서비스산업은 미국에서 발전의 동력이 됐는데 우리나라에선 낮은 생산성으로 경제의 발목을 잡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서비스 산업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제조업의 39.7% 수준이다. 미국을 100으로 놓고 보면 2021년 기준 51%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9.9)보다 낮고 독일(59.2)이나 일본(56)에 못 미쳤다. 같은 해 국내총생산(GDP)의 44%, 취업자의 65%를 차지하는 비중있는 산업으로 양적 성장을 이뤘는데 낮은 생산성으로 허덕이니 우리 경제도 덩달아 취약점에 노출된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1.94%, 내년엔 1.88%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OECD 분석은 이래서 충격적이다. 2001년만 해도 5.5%에 달했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04년 4%대, 2009년 3%대로 떨어졌고 이후로도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아무래도 서비스 산업의 저생산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서비스는 공짜라는 잘못된 인식은 서비스 산업이 오랫동안 제조업을 지원하는 보완적 역할에 자족하게 했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큰 산업이 아니라 공공재나 무상 제공 경제활동이라 생각해 왔다. 그 결과 민간자본의 서비스 산업에 대한 투자율은 2000년 26%에서 2022년 18%로 하락했다. 투자가 없으니 기업이 없고 기업이 없으니 애써 키운 인재도 나라를 떠나거나 다른 업종을 기웃거린다. 그 결과 금융, 통신, 교육 등 고부가가치형 서비스 산업은 내수에 치중돼 있고 해외 진출은 경험도 없고 성공사례도 없다. 그 틈에 규제가 서비스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파고들어 의욕과 창의가 더욱 위축됐다. 낮은 생산성은 당연한 귀결이다.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에 일찍부터 눈뜬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성장했다. 한국은 2012년 처음으로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었으나 12년째 4만 달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이 만들어낸 고부가가치가 서비스 산업으로 융합되는 후방효과를 누리지 못한 탓이다. 반면 미국은 정보통신, 과학기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성장에 힘입어 2000년 3만 달러 시대를 연 후 7년 만인 2007년 4만 달러를 돌파했다. 영국도 법률, 금융 등의 서비스 산업을 앞세워 3만 달러 진입 2년 만에 4만 달러를 기록했다.
서비스산업을 제대로 된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정책은 여러 정부에서 시도됐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는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을 정부가 발의하기도 했지만 15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법안은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 연구개발 투자확대, 전문 연구, 교육기관 육성 등을 통해 국내외 수요기반을 확보하고 성장동력을 키우자는 게 목표였다.
좋은 취지인데 ‘서비스=공짜’라는 프레임에 온갖 이권이 연루되어 있고 이해관계자도 많다. 규제에 탐닉한 기관도 많고 정치적 스캔들의 단골 영역이기도 하다. 누군들 공짜를 싫어하겠는가? 의료투자에 민간자본을 활용하라 해도 ‘영리병원=국민건강 훼손’의 프레임으로 의료민영화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대학 등록금이 10년이 넘게 동결되어도 장관이 된 수많은 대학교수들은 이를 문제로 제기하지 못한다. 이래서 범정부 차원의 접근이 있어야 하고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재명 정부가 서비스산업 기본법을 성사시키면 어떨까? 임기 초의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이 있어 꼭 필요하나 지지율이 낮은 정책에 결단을 내릴 수도 있고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의 설득도 이 정부가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되면 공짜에 찌들어 기름 범벅이 된 군만두가 제값을 받고 서비스될 수가 있다. 중국집 주인의 찌든 주름살도 저절로 펴질 수가 있다. 서비스가 공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바로 내 곁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