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야말로 쏟아부었습니다.
연간 강수량의 절반 이상이 닷새 만에 쏟아지는 ‘괴물 폭우’가 한반도를 강타했는데요. 충남 서산에선 하루 400mm가 넘는 비가 내렸고 광주 등 주요 도심의 일부 도로는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죠. 산사태로 고립된 마을이 속출한 데다 도로는 끊기고 다리는 무너져 결국 응급구조 헬기까지 투입됐는데요. 40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십 명의 실종자, 1만 명에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시간마다 특보와 긴급재난문자가 쏟아졌지만 이번 폭우를 목도한 시민들의 반응은 비슷했는데요. “이 정도일 줄 몰랐다”였죠.
예보가 부족했던 탓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비였을까요. 반복되는 극단적 폭우 속에서 ‘왜 또 못 맞췄냐’는 비판과 ‘불가항력이었다’라는 반론이 맞서는 중인데요. 한반도 국지성 호우 예보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16일부터 닷새간 쏟아진 사상 초유의 폭우로 전국이 물에 잠겼는데요.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전날 오후 9시 기준 사망 18명, 실종 9명이 발생했으며, 임시 대피 인원은 9887세대 1만4166명으로 집계됐죠. 시설 피해는 공공·사유 시설을 합쳐 4000건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특히 17일 충남 서산에는 시간당 114.9㎜의 물폭탄이 쏟아졌는데요. 일일 누적 강우량은 413.4㎜로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수준의 비였죠. 누적 강수량 793.5㎜를 기록한 경남 산청군 또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지역인데요. 이 외에도 경기 가평, 광주광역시, 전남 나주, 충남 아산 등에서도 피해가 속출했죠.
이 괴물급 비는 어디서 온 걸까요?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북태평양고기압을 지목하는데요. 한반도 주변 바다와 필리핀 해역의 높은 해수면 온도가 고기압의 덩치를 비정상적으로 키웠고 남쪽에서 끌어올린 다량의 수증기가 북쪽 찬 공기와 충돌하며 구름을 키운 거죠. 사실상 기후변화로 인한 장마의 붕괴가 이번 폭우의 본질이라는 분석입니다.
최근 1년 사이 시간당 100㎜를 넘는 폭우는 16차례 발생했는데요. 기상청에 따르면 여름철 집중호우의 발생 빈도는 지난 50년간 10배 이상 늘었고 비는 7~8월로 점점 집중되며 규모도 커지는 추세입니다. ‘이례적 현상’이 아니라 이제는 일상이 된 기상재난 시대에 들어섰다는 의미죠.
‘국지성 집중호우’는 말 그대로 좁은 지역에 짧은 시간 동안 쏟아집니다. 10~30분 만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소규모 구름 덩어리는 레이더에 포착되기 어렵고 실제로 대부분 비구름은 발생 후에야 감지되죠. 여름철 대류성 폭우처럼 1~2㎞ 수준의 공간에서 갑자기 생겨나는 구름은 제대로 포착되지 않거나 시차가 생기게 되는데요. 사전 예측보다는 “쏟아질 것 같다”는 경보에 가까운 대응이 현실입니다.

거기다 이번 비는 대부분 ‘야행성 집중호우’였는데요. 한밤중에 비가 집중되며 대응이 늦어졌죠. 이유는 대기 역학에 있습니다. 밤이 되면 지면이 식게 되고 복사냉각이 일어나며 하층의 공기가 가라앉아 상층과의 온도 차가 벌어지는데요. 이때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하고 습한 하층 제트(대기 하층에서 발생하는 남서풍)가 수증기를 몰고 들어오면 불안정성이 극대화돼 폭우를 부르게 되는 수순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폭우 속 하층 제트는 몇 시간 전까지도 어디로 흐를지 확정되지 않은 ‘불확실성’ 그 자체였죠.
‘관측자료의 한계’도 구조적 문제로 꼽힙니다. 한반도는 북쪽은 DMZ, 서·남·동쪽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주변 대기의 변화나 수증기 흐름을 미리 포착하기가 어려운데요. 관측장비가 촘촘하게 배치된 유럽과는 달리 우리는 바다 위로 나가는 구름을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하늘은 빈틈이 많다는 얘기죠.
예보는 수치 모델로부터 시작되는데요. 바람, 기온, 습도, 기압 등 관측 데이터를 슈퍼컴퓨터가 계산하면 미래 몇 시간 후의 대기 흐름이 도출되는데 이를 ‘수치예보모델’이라 부릅니다.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한국형 수치예보모델(KIM)’로 2020년 4월부터 날씨 예보 생산에 활용 중인데요. 현재까지는 개선 상황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죠. 구름의 생성과 소멸, 강수 발생 조건은 아직도 과학적으로 완벽히 해석되지 않은 영역인 데다 전국 수백 개 지점의 변화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기상청 예보관의 팍팍한 교대 근무도 부정적인 요소로 지목됩니다.
2022년 당시 자료를 보면 1~5월 기상청 강수유무 정확도(ACC)는 95.7%였지만 6월엔 86.3%로 급락했습니다. 실제 예보를 맞춘 임계성공지수(CSI)는 평균 40%대에 머물렀고 강수 맞힘률(POD)도 0.54에 불과했는데요. 이처럼 여름철엔 대기가 불안정하고 강수 발생 조건이 수시로 변해 예보 자체가 어렵습니다. 과거에는 여름이면 장마전선이 제주에서 북상하며 일정 패턴으로 비를 뿌렸는데요. 장마가 끝나면 폭염, 8월 말이면 태풍이 왔지만 이제 그런 계절적 순환은 무너졌죠.
기상청도 이를 인정하며 “기후변화로 인해 예보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복합기상현상이 등장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이번 폭우 또한 하루에도 2~3번 위치를 바꾸고 고기압 가장자리에서 만들어진 작은 저기압이 ‘물폭탄’을 유도했습니다.


그렇기에 ‘예보가 자주 빗나간다’는 비판은 예보의 구조적 한계와 기후 변화 속도를 간과한 시각일 수 있는데요. 과거 30년의 데이터가 앞으로 1주일을 설명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우리가 보는 건 ‘오보’가 아니라 기후 불안정 시대의 흔들리는 정보력일지도 모르죠. 여름 그 자체로 예보가 어려운 계절, 더는 ‘예보 실패’에만 머물 수 없는데요. 우리는 이미 대응 중심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