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제미나이’와 병행 전략…삼성의 AI ‘투트랙 실험’
스마트폰 넘어 TV·냉장고까지…빅스비, 삼성 생태계 통제 허브로

삼성전자가 자사 AI 플랫폼 ‘빅스비’를 단순 보이스 어시스턴트가 아닌 통합 AI 에이전트로 재편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갤럭시 AI와의 통합 전환 속에 빅스비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삼성은 여전히 대규모 조직과 투자를 유지하며 독자 AI 생태계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신제품에 구글 제미나이 인공지능(AI) 을 본격 탑재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빅스비의 역할 전환과 기능 고도화 작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기존 음성 명령 중심의 보이스 AI가 아니라, 사용자 행동과 의도에 반응하는 AI 에이전트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빅스비를 담당하는 전담조직을 MX사업부 내에 운영 중이며 삼성리서치 산하를 포함해 해외 연구소, 타 사업부까지 포함할 경우 약 1000명 규모의 인력이 관련 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빅스비는 단순한 음성 인터페이스가 아닌, 삼성의 고유 AI 에이전트로서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있다”며 “하드웨어와 서비스 전반에 걸쳐 더 깊이 통합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완성도 높은 형태로 재정비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외에도 스마트TV, 냉장고, 세탁기 등 주요 가전에 업그레이드된 빅스비를 적용하고 있다. 예컨대 음성으로 에어컨을 제어하거나, 냉장고 디스플레이를 통해 식재료를 관리하고 추천 레시피를 실행하는 등의 기능이 빅스비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날부터는 2025년형 AI TV에 탑재된 '클릭 투 서치(Click to Search)' 기능에 자연어 처리 기반의 향상된 '빅스비'를 적용하는 업데이트도 진행한다.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사용자는 TV와 대화하듯이 쉽게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스마트싱스(SmartThings) 플랫폼과의 연동도 점차 고도화되면서, 빅스비의 존재감은 단순 비서 기능을 넘어 ‘집 전체를 아우르는 AI 에이전트’로 확장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외부 초거대 AI 모델과 자체 플랫폼을 ‘병렬 전략’으로 가져가는 데 주목하고 있다. 갤럭시 AI는 텍스트 요약·통역·이미지 편집 등 복잡한 연산 작업에 특화돼 있으며 빅스비는 로컬에서 빠르고 정확한 명령 수행 및 하드웨어 연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각각의 강점을 극대화하면서 장기적으로는 두 플랫폼 간 유기적 통합도 고려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의 AI 전략은 ‘내재화된 에이전트’와 ‘외부 기반 생성형 AI’를 병행해 하드웨어 경쟁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며 “AI 에이전트가 향후 개인화된 비서로 진화하는 만큼, 빅스비는 단순한 잔재가 아닌 삼성 생태계의 핵심 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빅스비를 처음 선보인 2017년 이후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거쳐왔지만, 갤럭시 AI의 등장 이후 그 존재감이 희미해졌다는 평가도 있었다. 특히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한동안 정체되고 글로벌 음성 AI 시장에서 아마존 알렉사·구글 어시스턴트 등에 밀리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빅스비는 버려졌다’는 시장의 오해도 커졌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빅스비를 삼성 생태계의 통제 허브’로 자리 잡게 하겠다는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음성 명령을 넘어, 사용자의 맥락과 상황을 인식하고 기기를 제어하는 ‘의도 기반 AI’가 가전과 모바일 전반에 퍼지고 있다”며 “삼성은 빅스비라는 내재화된 인프라를 통해 하드웨어 중심의 AI 플랫폼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