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향이란 매혹을 갖게 하는 마음의 지향이자 경향을 가리킨다. 소비 행위를 하거나 연애 상대를 고를 때, 취향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취향은 나를 나답게 만드는 아비투스이자 내면에 찍힌 낙인이다. 돌아보니 내가 친하게 지낸 사람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취향이 인격을 반영한다고 믿는다. 고상하고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 훌륭한 인격을 가졌으리라. 반대로 취향이 천박한 이에게서 청고한 인격을 기대하는 건 난망한 일이다.
나는 음악 취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것은 스물 무렵 고전음악에 빠져 지낸 경험 때문이다. 당시 나는 쥐가 풀방구리 드나들 듯 고전음악 감상실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을 처음 들으며 심장 박동이 빨라지다가 절정 부분에서는 숨이 멎는 경험을 했다. 베토벤 음악에 식견은 없었지만 피아노 건반을 타건할 때마다 울려 나오는 음에 담긴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내 영혼이 반응했던 것이다.
바흐의 ‘파르티타’나 차이콥스키의 ‘피아노협주곡’을 처음 들었을 때도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데, 그게 음악의 힘이라고 믿었다. 20대 한때를 고전음악 감상실에서 보내며 쇼팽, 브람스, 파가니니, 비탈리, 브루흐, 무소르그스키, 라흐마니노프 같은 이들의 음악을 들었다. 이때 들었던 음악들에서 내 상심한 영혼은 위로와 기쁨을 얻고, 결과적으로 고전음악이 내 취향의 한 품목으로 굳혀졌으리라 믿는다.
고전음악을 미칠 만큼 좋아하지만 타인에게 제 취향을 강요하는 편협한 취향의 사람은 싫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을 좋아하지만 여럿이 어울린 자리에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거침없이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좋다. 그 취향의 유연성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나는 대체로 책을 읽는 습관이 밴 사람, 전시장을 자주 찾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연주회를 가는 사람, 항상 무해하고 재치있는 유머를 즐기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취향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교양인이고,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유쾌한 까닭이다.
당신의 숨은 내면이 어떤가를 잘 보여주는 것은 바로 당신의 취향이다. 대화가 돈벌이의 수단인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끔찍하다. 말할 때마다 제 학벌이나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도 끔찍하다. 그것은 교양의 빈곤과 취향의 너절함을 드러낼 뿐이기 때문이다. 그밖에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사람, 지나치게 잘난 척하는 사람,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 자기 잇속 차리기에 바쁜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대화의 소재가 풍부한 사람, 친절하고 다정한 인격을 가진 사람, 이타적이고 베푸는 걸 좋아하는 사람, 여행을 좋아하며 편견이 없는 사람,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자주 만나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 나는 특히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은 대화의 소재가 풍부하고 식견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이 항상 보람 있고 즐거워지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