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무더위는 온도에 습도도 매우 높아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를 뜻하는데요. 지난 주말 날씨에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주말 사이 마치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것 같은 찜통더위가 나타났습니다. 남서쪽에서 덥고 습한 공기가 지속해서 유입됐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전국 곳곳에 출몰한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 떼까지 더해지면서 불쾌지수도 높았죠.
그러나 한쪽에서는 푹푹 찌는 무더위도, 자꾸만 달라붙는 러브버그도 개의치 않고 신나게 함성을 내지르거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열기의 중심은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진의 솔로 팬콘서트에서 비롯됐는데요. 데뷔 이래 첫 번째 팬콘서트라는 특별함이 더해져 각종 악조건에도 공연장을 찾은 아미(팬덤명)들이 적지 않았죠.
다만 이번 공연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콘서트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솔로 단독 콘서트라고 하기엔 규모도, 세트리스트도 차이가 있었는데요. 그렇다고 팬미팅이라고 하기엔 성대한(?) 규모와 세트리스트였죠.

28일과 29일 양일간 고양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솔로 팬콘서트 '#런석진_에피소드.투어(#RUNSEOKJIN_EP.TOUR)'는 진의 자체 콘텐츠 '달려라 석진'의 세계관을 공연으로 확장한 무대였습니다.
그런 만큼 공연은 단순한 음악 감상에 그치지 않았는데요. 무대는 '달려라 석진'의 에피소드와 긴밀히 연결돼 눈길을 끌었죠. '구름과 떠나는 여행'에서는 한라산 등반기를 담은 '달려라 석진' 1화의 전경이 LED를 가득 채워 마치 진과 함께 산에 오르는 듯한 느낌을 전달했습니다. '슈퍼 참치' 무대는 10화 '해양 경찰편'을 바탕으로 바다와 배가 어우러진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했고요. 또 '아이 윌 비 데어(I'll Be There)'는 35화의 '미션 임파서블' 콘셉트를 기반으로 '달려라 석진'의 미션마다 등장하는 카운트다운' 요소를 가미해 극적인 몰입을 유도했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진의 도전'이라는 콘셉트 아래 펼쳐진 각종 미션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떼창, 응원, 게임 등 진과 팬들이 함께 수행해야 하는 여러 가지 미션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는데요. 팬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공연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진 역시 팬들에게 "단결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각종 게임에 임했고, 팬들은 주어진 키워드를 몸으로 설명하는 등 열정적인 모습으로 순식간에 무대로 녹아들었죠.
진의 특별한 도전도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2020년 공개한 솔로 자작곡 '어비스(Abyss)'를 피아노 연주와 함께 열창했는데요. 그는 "투어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해봤다. 너무 긴장됐다. 이건 밴드 분들도 못 도와주신다. 손도 다리도 달달 떨었는데 괜찮았나. 다음에도 몰래 깜짝 미션에 도전해보겠다. 열심히 해볼 테니 기대해 달라"고 전해 열띤 호응을 받았죠.
이는 팬콘서트의 차별화 포인트기도 합니다. 팬미팅이 소규모 교감에, 단독 콘서트가 화려한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춘다면 팬콘서트는 양쪽의 매력을 절충한 포맷인데요. 교감과 퍼포먼스, 두 요소를 모두 잡으며 팬과 아티스트 간의 거리를 좁히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팬콘서트가 단순히 콘서트와 팬미팅을 섞은 이벤트는 아닙니다. K팝 업계는 이 형식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팬덤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고 있는데요. 아티스트와 팬이 함께 무대를 채워가는 구성은 소속감을 자극하고, 공연을 '소비'가 아닌 '경험'으로 인식하게 만들죠.
실제로 팬콘서트는 관객 참여형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며 팬들을 공연 일부로 끌어들입니다. 각종 미션부터 미니 게임, 이벤트가 더해지죠. 무대와 객석 사이를 구분 짓는 경계가 흐려지고 팬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닌 능동적인 참여자의 위치로 올라섭니다. 이는 팬미팅보다 넓은 규모, 콘서트보다 밀도 높은 교감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팬 중심' 전략에 적합하죠.
경제적 측면에서도 팬콘서트는 꽤 효율적인 포맷입니다. 소규모 팬미팅보다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면서도 콘서트 대비 무대 연출 등에서 부담은 덜합니다. 여기에 VIP 패키지, 굿즈, 체험 부스 등 부가 수익 요소를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한계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통상 솔로 아이돌 가수의 단독 콘서트는 1시간 30분~2시간 안팎으로 진행됩니다. 앵콜까지 더하면 3시간 이상도 기록하죠. 이 시간을 채울 수 있는 다채로운 세트리스트는 물론, 연이어 무대에 임할 수 있는 체력과 원숙한 무대 경험이 필수적입니다. 발매한 솔로곡이 적을 경우 단독 콘서트의 세트리스트를 구성하기 어려울뿐더러 공연의 완성도와 팬들의 몰입도도 떨어질 수 있죠.
이때 팬콘서트에서는 솔로곡은 물론 멤버들과의 유닛 무대, 타 가수의 커버 무대, 팬들과의 토크, 게임, 이벤트 등 다양한 콘텐츠로 무대를 구성할 수 있는데요. 즉 솔로곡이 많지 않아도 팬들과의 교감과 엔터테인먼트 요소로 풍성한 공연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이에 솔로곡이 적은 아이돌 멤버나 신인 그룹이 팬콘서트를 진행한다는 소식도 어렵지 않게 들려옵니다.
이에 더해 팬들만을 위한 특별한 무대도 공개합니다. 기존 콘서트의 세트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은 곡이나 미발매곡을 깜짝 공개하기도 하고요. 남다른 편곡이나 새로운 퍼포먼스, 게스트를 무대에 올리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참여'와 '소통'에 초점을 맞춘 이 방식은 팬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장기적인 팬덤 유지를 가능케 하는데요. 결국 팬콘서트는 단기 이벤트가 아닌 팬덤 기반을 확장하고 견고히 하기 위한 일종의 브랜드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전략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진은 고양 공연을 시작으로 일본 치바와 오사카, 미국 애너하임·댈러스·탬파·뉴어크, 영국 런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9개 도시에서 총 18회의 팬콘서트 투어를 이어가며 글로벌 팬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앞서 케플러는 2월 데뷔 이래 첫 팬콘서트 투어 '케플러 센트'(Kep1er Cent)'를 열고 팬들을 만났는데요. 스페셜 게임 코너는 물론 "팬들에게 꼭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며 '리와인드(Rewind)' 무대를 비롯해 팬콘서트에서만 볼 수 있는 유닛 및 단체 커버 무대를 깜짝 공개했습니다. 미쓰에이의 '허쉬(Hush)', 샤이니 태민의 '길티(Guilty)', 스트레이 키즈의 '백 도어(Back door)' 커버 무대도 선보이면서 그간 볼 수 없었던 매력까지 발산했죠.
아이브는 4월 팬콘서트 '아이브 스카우트(IVE SCOUT)'를 통해 스카우트 대원으로 변신, 최고의 대원이 되기 위한 능력치 검증에 돌입해 '지혜', '생존 기술', '팀워크' 등 다양한 덕목에 걸맞는 미션들을 수행하며 재미를 줬습니다. 오렌지 캬라멜의 '마법소녀', 두아 리파의 '레비테이팅(Levitating)' 등 커버 무대도 베일을 벗었고요. 2월 발매한 세 번째 미니앨범 '아이브 엠파시(IVE EMPATHY)'의 수록곡 'TKO' 무대까지 최초 공개해 눈길을 끌었죠. 아이브는 이 팬콘서트를 나고야, 후쿠오카, 고베, 요코하마 등 4개 일본 4개 도시에서도 11회에 걸쳐 진행하면서 10만여 명의 팬들을 만났습니다.
세븐틴의 스페셜 호시X우지는 다음 달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을 시작으로 부산을 거쳐 대만 타이베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팬콘서트 '호시 X 우지 팬 콘서트 [워닝](HOSHI X WOOZI FAN CONCERT [WARNING])'을 엽니다. 8월 광주에서 팬콘서트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죠.
B1A4도 다음 달 홍콩, 일본에서 팬콘서트를 엽니다. 데뷔 14년의 음악 여정을 집약한 세트리스트는 물론 다양한 코너들로 현지 팬들과 호흡할 예정이죠. 규모나 장르를 막론하고, 팬콘서트라는 형식이 글로벌 K팝 시장에서 하나의 보편적 언어로 기능하는 셈입니다.
K팝 팬덤은 소비자를 넘어 문화적 연결을 이끄는 주체로 성장한 모습인데요. 진이 팬콘서트 공연 중 "혼자 무대에 섰는데도 외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도 팬덤의 응집력에 있습니다. 팬콘서트는 팬들과의 직접적 연결을 강화하는 통로이자, 브랜드의 감정 자산을 키우는 수단인 거죠. 하이브리드형 공연인 팬콘서트는 감정적 밀도와 유연한 확장성을 모두 갖춘 콘텐츠로 K팝의 '팬덤 중심 진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이 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