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썩은 감자로 만든 떡

입력 2025-06-2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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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지난주 강릉에서 전국 ‘걷는 길 연합회’ 사람들이 모여 2박3일간 트레킹 축제를 했다. 제주에 ‘올레길’이 있고, 지리산에 ‘둘레길’이 있듯 산과 바다와 호수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강릉에는 ‘바우길’이라는 걷는 길이 잘 단장되어 있다.

길 이름부터 설명하자면 강원도와 강원도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감자바우’라고 부르듯 ‘강원도 바우길’ 역시 강원도의 산천답게 인간 친화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트레킹 코스로 이어졌다. 바우(Bau)는 또 바빌론 신화에 손으로 한번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죽을병을 낫게 하는 친절하고도 위대한 건강의 여신으로 강원도 바우길도 이 길을 걸으면 바우 여신의 축복처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길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주말마다 그곳에서 만나 길을 걷는다. 매주 토요일마다 정기 걷기를 하는데 요즘 대관령 마을길은 감자꽃이 한창이다. 수만 평 넓이의 밭에 감자꽃이 피면 그것도 가을 메밀꽃처럼 장관이다. 그래서 대관령에 가면 ‘감자꽃 필 무렵’이라는 조금 익살스러운 이름의 음식점도 있고 카페도 있다.

고향에 갈 때마다 꼭 감자로 만든 음식을 먹고 온다. 어릴 때 많이 먹으면 물릴 법도 한데 지금도 나는 감자밥을 좋아하고, 감자 옹심이와 감자전을 좋아한다. 감자로 만든 음식들은 아무리 풍족하게 차려내도 저절로 소박하게 느껴진다. 소박한데도 아주 잘 먹고 제대로 대접받고 온 느낌이 든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강원도 감자떡이다.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이름만 감자떡인 것이 아니라 진짜 감자를 온 여름 내내 단지에 넣어 썩히고 삭혀서 은빛 가루처럼 얻어낸 말 그대로 감자가루로 만든 감자떡을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강릉말로 ‘썩감재갈기’라고 부르는, 밭에서부터 썩은 감자를 단지에 삭혀서 얻어낸 갈색빛의 ‘썩은 감자가루’로 만든, 그래서 도시 사람들 입에는 조금은 콤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썩감자떡’을 잊을 수가 없다.

요즘은 이런 감자가루가 없다. 감자는 장마가 조금만 길어져도 썩지만 썩은 감자에서 얻은 감자가루는 단지에 수십 년 보관해도 썩지 않는다. 기둥과 지붕이 무너진 집 곡간에 감자가루는 그대로 있더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다. 그런 감자가루를 뜨거운 물로 잘 반죽하여 거기에 밭에서 막 따온 풋강낭콩을 팥소로 넣어 찐 감자떡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이런 음식을 만들 줄 아는 어른들도 마을에 몇 명씩만 계신다. 예전에 고향에서 자라 도시로 나가 학교를 다닐 때 방학이 되면 어머니가 잊지 않고 감자떡을 만들어주셨다. 이제는 아무리 먹고 싶다 하여도 집에서는 만들어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집집마다 살림들이 나아지면서 정작 명절이나 아버지 어머니의 생신이 돌아와 형제들이 다 모였을 때는 거기에 맞는 명절 음식과 생일 음식을 먹게 되다 보니 감자떡을 맛볼 기회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우리가 나이를 먹는 사이 아버지 어머니도 저 세상으로 떠나 이제 그 음식은 고향의 아주 특별한 음식점에서 어쩌다 한 번 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한여름 밭에서 막 따온 강낭콩을 넣어 쪄 먹었던 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도 여름 방학을 해서 형제들이 다 모였을 때 그것을 쪄 먹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번 여름에 형제들 모두 우리가 자란 옛집 마당에 모였을 때 꼭 한번 이 떡을 맛보고 싶다. 하지가 지나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면 저절로 떠오르는 음식이다. 추억이란 누구에게도 이토록 중독성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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