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7세 데뷔 후 뛰어난 활약
유럽 복귀 이후도 '원클럽맨'
부상 이후 팀 전력 외 구상에
이적 타진…팬들은 구단 비판

"돈 많이 벌고 FC 서울로 갈게요."
곤란한 질문에도 결단코 FC 서울(이하 서울)을 외친 젊은 선수. 여기 누구보다 친정팀을 사랑한 당찬 선수가 한 명 있다. 바로 기성용이다. 보답을 잊지 않고 다시 돌아온 프랜차이즈 스타. 한때 악동에서 상암벌의 심장이자 정신적 지주로 구단 통산 235경기에 나선 '영원한 수호신의 캡틴' 기성용이 서울을 떠난다.
대한민국 역대 최고 미드필더로 손꼽히는 기성용은 2009년 해외 진출로 팀을 떠난 이후에도 서울을 상징하는 선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스페인을 거쳐 2020년 다시 복귀하며 "돌아오겠다"라는 자신과 팬들을 향한 약속을 지켰다.
선수로서도, 팀의 맏형으로서도 기성용은 제 역할을 다했다. K리그 복귀 후에도 유럽 무대를 호령했던 클래스를 어김없이 보여줬다. 축구 선수로서는 불혹의 나이인 만큼 잔부상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매 시즌 꾸준히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팀의 중심을 지켰다.
그런데도 기성용과 서울은 서로가 결별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서울은 구단 SNS를 통해 "영원한 레전드 기성용 선수가 팬분들께 잠시 이별을 고한다"고 밝혔다. 기성용 또한 SNS를 통해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을 생각하며 무겁고 죄송한 마음으로 글을 올립니다"라며 "이적을 결정하게 됐습니다"라고 공식 입장을 전했다.

유력 행선지는 같은 K리그 팀인 포항 스틸러스. 기성용의 이적 보도와 구단의 공식 발표가 이어지자 구단 서포터즈 수호신을 비롯한 서울 팬들이 분노했다. 이들은 구단 훈련장인 경기도 구리 챔피언스파크에 근조 화환을 보내며 구단 비판에 나섰다.
데뷔부터 은퇴까지 생각했던 구단을 떠난 기성용.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왜 팀을 떠날 생각을 했을까. 구단은 왜 그를 끝까지 품고 가지 않았을까. 그가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까.
2006년 만 17세 나이로 프로 무대에 데뷔한 기성용은 이후 줄곧 서울에서 커리어를 이어갔다. 2007년부터 1군 무대에 이름을 올리며 리그 16경기와 리그컵 6경기에 출전, 새로운 스타 플레이어 탄생을 알렸다. 2008년에는 리그 18경기에 출전, 8월 23일 대구 FC와 경기에서 터뜨린 데뷔골을 포함해 총 4골을 기록했다.
2009년의 기성용은 놀랍게 달라졌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아쉽게 패한 경험이 기성용을 한 층 성장시켰다. 기성용은 2009년 한 시즌에만 리그, 플레이오프, 리그컵 포함 31경기에 출전해 4골 10도움을 올리며 정상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 무대에서는 기성용의 활약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결국, 2009년 겨울 기성용은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셀틱 FC로 이적했다. 이적 발표는 8월이었지만, 셀틱 합류는 이듬해 1월로 결정됐다. 기성용은 시즌 후반기에도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힘을 보탰다.
재밌는 점은 당시 '쌍용'으로 불리며 기성용과 호흡을 맞췄던 이청용도 2009년 여름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 원더러스로 떠났다는 것이다. 서울은 앞서 2008년에 박주영을 프랑스 리그앙 AS모나코 FC로 이적시키기도 했다. 2년 사이에 한 팀에서만 유럽 무대로 선수를 3명 진출시킨 셈이다.
2010년 셀틱에 입단해 2011-2012시즌까지 활약한 기성용은 2012-2013시즌 프리미어리그 스완지 시티 AFC로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 2018-2019시즌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를 거쳐 자유계약 신분이 된 기성용은 2020년 초 K리그 복귀를 희망했다.
하지만 K리그 복귀는 무산됐고, 결국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RCD 마요르카와 단기 계약을 맺었다. 애초 기성용이 이적 시장에서 먼저 접촉한 건 친정팀 서울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연봉 조건과 구단의 미온적 태도에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서울이 기성용 영입을 주춤하는 사이, 전북 현대모터스가 'K리그 최고 대우'를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기성용이 해외 진출할 때 '국내 복귀 시 서울에 입단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는 사실을 알고 물러섰다.
당시 기성용 복귀 무산에 팬들은 "구단 프랜차이즈 스타를 놓쳤다"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서울 측은 "기성용 계약서에 보상금 조항이 있으나, 선수와 협상 중에 이를 언급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렇게 기성용은 2020년 6월부로 스페인 생활을 마무리, 다시 한번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이 됐다. 이후 기성용은 서울과 협상을 다시 한번 이어갔고, 7월 구단이 공식 발표를 통해 기성용의 복귀를 알렸다. 계약 기간은 2년 6개월+1년. 이로써 기성용은 2009년 이후 11년 만에 K리그와 친정팀에 돌아왔다.
기성용은 그해 리그에서 5경기에 출전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이후 2021년 35경기 3골 1도움, 2022년 35경기 2골 4도움, 2024년 20경기 2골 5도움을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에이스로 서울의 중원을 지켰다. 특히 2021시즌에는 3월 13일 인천 유나이티드전, 17일 광주 FC전, 21일 수원전 3경기에서 연달아 결승 골을 넣는 기염을 토해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들어 부상 등으로 입지가 좁아졌다. 4월 대전 하나 시티즌과 경기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재활에 들어간 기성용은 최근 부상에서 회복하며 훈련에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김기동 현 서울 감독은 황도윤, 류재문, 이승모, 최준 등을 기용했다.
터질 게 터졌다. 앞서 24일에 기성용이 포항으로 이적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울 '원클럽맨'으로 활약한 기성용의 이적설은 K리그와 서울 팬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튿날 서울과 기성용이 각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결별 소식을 전했다.
서울은 25일 공식 SNS를 통해 "서울 영원한 레전드 기성용 선수가 팬분들께 잠시 이별을 고한다. 서울은 구단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원한 캡틴 기성용 선수와의 인연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결정은 올 시즌 서울 선수단 운영 계획에 기회가 없음을 확인한 기성용 선수가 남은 선수 인생에 있어 의미 있는 마무리를 위해 더 뛸 수 있는 팀으로 가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며 "서울은 선수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담아 이번 요청을 수락하게 됐다"고 결별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기성용은 더 많은 출전 시간을 바랐지만, 김 감독과 면담에서 자신이 전력 외 자원으로 분류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부상 복귀 후 자신이 김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되자 포항 이적을 타진한 것이다. 앞서 21일 기성용은 팀 클럽하우스에서 "내부에서 (나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해 이적을 결정하게 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성용도 자신의 SNS를 통해 공식 입장을 전했다. 기성용은 "응원해 주는 팬들을 생각하며 무겁고 죄송한 마음으로 글을 올린다. 얼마 전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 앞으로 팀의 계획에 제가 없다는 것을 듣게 됐다"며 "그러면 은퇴하겠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고 감독님께서 제 뜻을 존중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단에 제 마음을 말씀드리고 저를 필요로 하는 팀을 기다리고 있을 때, 포항 박태하 감독님이 가장 먼저 선뜻 제가 필요하다고 연락을 줬고 이적을 결정하게 됐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품어준 박태하 감독님께도 정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저 또한 여러분들을 향한 마음만은 변치 않을 것을 약속드리고 영원히 가슴에 담아 가져가겠다. 앞으로도 우리 선수들 많이 응원해 주고 힘이 돼달라"며 "이런 소식으로 인사드리게 돼서 정말 죄송하다. 감사했다. 사랑한다"고 팬들과 남은 선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팬들은 말 그대로 격앙된 분위기다. 서울의 공식 서포터즈인 '수호신'은 25일 입장문을 통해 비판에 나섰다. '수호신'은 "기성용 이적 상황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투명하게 공개하라"며 26일 오후 2시까지 감독의 입장 표명 발표를 요청했다.
팬들은 서울 모기업인 GS그룹 본사 건물 앞으로 근조화환을 보냈고, 이적 결정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전광판을 실은 트럭을 보내 시위를 벌였다. 또한 서울 훈련장인 GS챔피언스파크에도 근조화환을 보내는 등 분노를 쉽게 가라앉히지 않는 모양새다.

한편, 서울과 동행을 마무리하게 된 기성용의 포항행 소식이 곧 발표될 전망이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포항은 서울에 기성용의 이적 합의서를 보냈고, 서울은 이에 합의할 예정이다. 사실상 기성용은 포항 입단을 위해 메디컬 테스트 등 절차만 남은 셈이다.
포항 팬들은 기성용의 합류를 고대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포항은 이번 시즌 4위(승점 32)에 안착, 7위인 서울(승점 27)을 따돌리고 전북, 대전, 김천 상무와 상위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포항은 K리그 통산 198경기 14골 19도움을 기록한 '베테랑' 기성용의 합류로 큰 힘을 얻게 됐다.
공교롭게도 서울은 29일 오후 7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포항과 21라운드 리그 경기를 치른다. 기성용의 이적 절차가 빠르게 마무리된다면, 포항의 일원으로 상암벌에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