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정부 부채에 어찌 반응하는지를 점검한 실증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22일 한국재정학회에 따르면 연구진은 우리 정부 부채가 1% 늘면 소비자물가는 최대 0.15% 상승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이준상 교수·장성우 연구원, 한국은행 이형석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재정학연구 5월호에 게재한 ‘재정 건전성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 나온 결론이다.
이번 연구는 다소 이채롭다. 재정정책 연구는 경제성장에 재정이 미치는 효과를 조명하기 일쑤여서다. 그러나 연구진은 2000년 10월∼2023년 11월의 월간 지표를 분석한 연구에서 재정정책의 이면을 다뤘다. 결론도 시사적이다. 기초재정수지가 나빠지고 정부 부채·지출이 늘어나면 소비자물가부터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상승한다는 것이다. 특히 재정흑자일 때 부채 확대는 일시적 물가 상승에 그치지만, 재정적자 상황에선 더 크고 장기적인 물가 상승이 유발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이 큰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정부 부채를 늘리는 처방에 신중해야 하는 것은 ‘기대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가계는 향후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고, 이 기대가 실제로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재정 건전성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은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23일 국회 제출될 예정인 2차 추경안에 따르면 올해 정부 지출은 673조3000억 원에서 702조 원으로 늘어난다. 국가채무는 1273조3000억 원에서 1300조6000억 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나랏빚이 1300조 원을 넘어서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49.0%로 증가한다. ‘적자 중 부채 확대’ 경로가 눈앞에 있다. 이번 연구에 담긴 경고를 깊이 새기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2.50%로 인하했다. 인플레이션 걱정을 앞세울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깔렸을 것이다. 실제 통계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도 작년 동월 대비 1.9%로 목표치(2.0%)를 밑돌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 기세인 서울 집값만 봐도 그렇다.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일주일 새 0.36% 올랐다. 6년 9개월 만에 최대 폭 상승이다. 매매가만이 아니다. 전세·월세까지 급등세다. 이 판국에 정부의 돈 보따리가 방만하게 풀리면 어떤 풍선효과가 나타날지 알 길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물가 문제가 우리 국민에게 너무 큰 고통을 준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하지만 ‘빵 서기관’, ‘라면 사무관’으로 대처할 문제일지 의문이다. 정부 부채가 늘면 물가 안정을 해친다는 것은 사실 상식에 가깝다. 근본적 문제는 이 상식을 아랑곳하지 않고 확장적 재정정책에 매달리는 경향이 지상의 모든 정부에 있다는 점이다. 새 정부도 예외일 리 없다. 이번 연구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창이다. 민생 챙기기는 이 진실을 직시하고 중시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