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기승전중” 시대에 우리가 어떤 제품을 만들더라도 중국보다 더 멋지고 뛰어난 것을 만들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미제와 일제를 우리의 롤모델로 생각하지 않듯이, 중국을 뛰어넘을 ‘메이드 인 코리아’ 역시 어렵다는 걸 인정하는 편이 오히려 속 편할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승부를 걸 것인가? 물건이 더 이상 해답이 아니라면, 서비스와 시스템 그리고 O&M(Operation & Management·운영 및 관리)과 같은 연관 비즈니스 모델에서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한국은 산업 강국을 불과 두 세대만에 이뤘기 때문에, 산업형성 초기부터 축적된 노하우와 경험이 다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풍부하다. 기계·철강 제품은 중국에 비해 경쟁력을 잃을 수 있겠지만, 플랜트나 엔지니어링 산업은 여전히 우리가 훨씬 앞서 있고 앞으로도 중국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월마트나 유럽의 까르푸가 한국 유통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우려했지만, 오히려 이마트·롯데마트 등 우리 유통 업계가 국내에서 축적한 유통서비스 역량을 바탕으로 동남아나 아시아 유통채널로 거듭나는 데 좋은 자극이 되었다.
한국의 프랜차이즈 산업은 이제 한국만의 브랜드와 서비스에 머무르지 않고, 선진국·개도국 가리지 않고 글로벌 무대에서 멋지게 활약하고 있다. 교육이나 의료서비스 분야도 현지에 맞춘 유연한 접근과 글로벌 시각을 갖춘다면, 우리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 산업의 글로벌 전략에 따르면, 자연스럽게 한국 제품과 ‘메이드 인 코리아’가 따라붙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시스템 산업의 글로벌 진출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국가 비즈니스 전략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방위산업은 단순한 물건의 집합이 아니라 무기체계 내지 방산시스템이 총체적으로 구현되는, 일종의 물건과 서비스 결합산업이다. 이런 분야에서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방산물자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방산시스템을 진출 국가와 고객 요구에 맞춰 접합시킬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 시스템이나 LNG(핵화천연가스) 인프라 시스템 등 다양한 에너지·인프라 분야에서 시스템 산업역량을 글로벌로 펼치게 되면 중국이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분야가 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블루오션으로 다가올 O&M 산업은 우리가 중국과의 제조경쟁 단계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에너지나 의료시스템을 글로벌로 설립하게 되면, 이러한 시스템을 운영·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 내지 사후관리(AS)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는 데 10년이 걸리지만, 이러한 발전시스템을 운영하고 관리해주는 비즈니스는 100년에 걸쳐 우리에게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줄 것이다. 병원 시스템을 글로벌 거점에 설립해 놓는다면, 우리의 의료서비스 공급 경쟁력이 글로벌 환자들을 통해 인정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료서비스 경쟁력은 우리나라가 키워온 의료시스템이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이 되게 해줄 것이다.
특히, 15억 인구에 20조 달러 시장을 가진 중국은 더 이상 우리의 부품·소재 공급에 의존하는 세계의 생산기지나 공장이 아니다. 자체 내수 시장만으로도 충분한 자급자족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1억~2억 규모의 프리미엄 소비층을 타깃으로 한 중국 내수 시장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문화적으로 친밀도가 높은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기회다. 중국의 프리미엄 내수 시장을 공략하려는 외국 정부와 기업에 우리나라가 전략적 교두보가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기승전중.” 이제는 두려움의 키워드가 아니라, 우리가 넘어야 할 현실이자 새롭게 도모해야 할 미래다. 제품에서 서비스로, 서비스에서 시스템과 O&M 비즈니스 모델로. 이 전환이야말로 앞으로 대한민국 30년을 결정짓는 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