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혹시 이 환자분 피해망상이 아닐까?’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진지했고, 지적이나 인격적으로 특별히 병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후 층간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과의 면담이 계속되면서,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체로 상황은 이러했다. 어느 날 A는 위층에서 들리는 소음을 처음 듣게 되었다. 처음엔 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며칠간 계속되자 결국 위층으로 찾아가 벨을 눌렀다. “아,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당황하는 윗집 주민의 모습을 보자, 오히려 자신이 미안해졌다.
그러나 며칠 후 다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덩치가 작다고 깔보는 건가?’ 그렇게 무시당하는 듯한 비애감과 분노가 마음속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위층의 소음은 하나하나 의미를 가진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나를 괴롭혀 죽이려는 건가?’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거지?’
어느새 층간 소음과 대화를 주고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소음은 자신을 비웃고, 경멸하는 듯한 조롱으로 들렸다. 결국 윗집 주민은 점점 더 짜증을 내고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층간 소음 때문에 살인까지 벌어졌다는 신문 기사가 이해될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면담할 때 층간 소음으로 찾아온 환자들에게 꼭 물어본다. “윗집과 이야기를 나눠보셨나요?” “아직이요.” 이런 대답이 나오면 신신당부한다. “절대로 윗집에 누가 사는지 확인하지도, 말을 섞지도 마세요.” 환자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여름날 천둥과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쏟아질 때, 하늘을 향해 화를 내거나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야 당연하죠. 자연의 소리니까요.” “바로 그겁니다. 위층에 사는 사람이 내는 소음도 결국 호모 사피엔스라는 생물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소리가 아닐까요?” 환자들은 놀란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그 환자는 위층에서 소리가 나도 여름날의 매미 소리나 바람 소리, 천둥 소리처럼 자연 현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여전히 시끄럽긴 하지만, 마음이 훨씬 덜 예민해졌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창밖에서 요란한 경적 소리가 진료실의 고요함을 흔든다. 도시의 흔한 풍경이려니 생각하며, 다시 눈을 감고 조용히 낮잠을 청한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