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의 정치원론] 세평(世評)보다 심각한 포퓰리즘의 해악

입력 2025-05-29 18:57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퍼주기 등 인기영합보다 폐해 더커
선동과 적대시로 국가위기 내몰아
민주주의 깨는 정치불능 더는 안돼

선거철마다 포퓰리즘 논란이 일어난다. 6·3 대선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포퓰리즘은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이 때문에 논쟁이 초점을 잃기 쉽다. 각자 다른 뜻으로 포퓰리즘을 말한다면 논의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더 큰 문제는 포퓰리즘의 상대적으로 작은 해악을 논하다가 더 심각한 해악을 놓치게 된다는 점이다.

세간의 용례상 포퓰리즘엔 세 가지 뜻이 있다. 이 셋은 밀접히 연결되나 똑같지 않다. 우선, 국민의 뜻이 법 제도의 여과 없이 국정에 그대로 반영되는 현상, 또는 그것을 지향하는 사조를 뜻한다. 이 의미의 포퓰리즘은 법치, 입헌주의, 대의제보다 당대의 민의를 절대시하는 여론지상주의로 흘러간다. 그 뜻에 맞춰 인민주의, 민중주의, 대중주의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첫 번째 포퓰리즘은 장단점이 있음에도 아주 부정적인 뉘앙스를 지니진 않는다.

포퓰리즘의 두 번째 뜻은 국민이 원하는 대로 재정적·법적 혜택을 마구 제공하거나 그러겠다고 약속하는 정치 행위를 일컫는다. 나라 곳간이 비거나 법체계의 기본이 흔들려도 상관없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현재만 중시하는 선심성 퍼주기로서 인기영합주의라고 번역될 수 있다. 이 의미의 포퓰리즘이 요즘 선거판에서 여야(與野)가 상호 비난하는 쟁점 중 하나다. 부정적 뉘앙스가 짙어 상대를 낙인찍는 데 애용된다.

당장 표를 위해 앞날 고민 없이 각종 혜택을 뿌려댄다면 물론 곤란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해악만 세평에 오른다면 더 큰 걸 놓치게 된다. 포퓰리즘의 세 번째 뜻까지 짚어야 심각한 해악의 전모를 알 수 있다. 그 가장 심각한 포퓰리즘이란 △상대편을 기득권 세력인 적(敵)으로 규정해, △상대적 상실감·피해의식을 느끼는 기층 민중의 분노가 적을 향해 터지도록 선동하고, △그 분노를 이용해 정치적 득을 얻고자 정상적 관례를 무시하거나 선거 결과, 사법 판결마저 불복하거나 거리 시위, 건물 난입도 서슴지 않는 등 제도 틀을 무시하는 정치 양태를 말한다. 정치권의 호전적 대립과 교착은 물론 유권자 갈라치기, 정서적 양극화, 흑백논리 팽배, 사회 혐오감과 불신감 조장, 제도 틀의 붕괴 등 수반되는 해악이 총체적·근본적이다. 이런 포퓰리즘이 정치권을 휩쓸면 국가가 전면적 위기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 폐해가 가장 큰 만큼 세 번째 의미의 포퓰리즘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지난 수년간 정치를 망가뜨린 원흉이다. 여야는 가장 악성인 이 포퓰리즘에 빠져 정쟁을 벌이며 악순환을 이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청산’ 광풍, 더불어민주당의 공직자 탄핵 남발, 윤석열 대통령의 음모론 집착과 계엄령을 통한 친위 쿠데타 시도, 국민의힘의 ‘반탄’ 행위와 극우 세력화 등 정치를 불능 상태로 만든 일련의 현상을 보자. 모두 세 번째 포퓰리즘의 한 부분 또는 그 결과로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여야가 똑같이 서로를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고 각기 지지층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해 집단적 분노를 토하게 한다는 것이다. 야권은 여권을 행정 권력을 장악한 기득권 진영이라고, 여권은 야권을 입법 권력을 장악한 기득권 진영이라고 매도한다. 진보는 보수를 부패한 영속적 엘리트 집단이라고, 보수는 진보를 오만방자한 신흥 엘리트 집단이라고 서로 적대시한다. 입장에 따라 모두가 지배 계층이 되기도, 피억압 계층이 되기도 한다. 유권자 대부분은 이쪽 아니면 저쪽의 분노 자극 대상이다.

이번 대선 이후가 걱정된다. 정치권의 악성 포퓰리즘은 선거뿐 아니라 국정 전 과정에서 기승을 떨기 때문이다. 선심성 퍼주기쯤이 아닌,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유권자의 피해의식을 정략적으로 동원하고 제도 틀을 위축시키는 양태가 계속될 것 같다. 여기에 일각의 선거 불복 기미까지 더해진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달러가 움직이면 닭이 화내는 이유?…계란값이 알려준 진실 [에그리씽]
  • 정국ㆍ윈터, 열애설 정황 급속 확산 중⋯소속사는 '침묵'
  • ‘위례선 트램’ 개통 예정에 분양 시장 ‘들썩’...신규 철도 수혜지 어디?
  •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 62%…취임 6개월 차 역대 세 번째[한국갤럽]
  • 환율 급등에 증권사 외환거래 실적 ‘와르르’
  • 조세호·박나래·조진웅, 하룻밤 새 터진 의혹들
  • ‘불수능’서 만점 받은 왕정건 군 “요령 없이 매일 공부했어요”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6,995,000
    • -0.89%
    • 이더리움
    • 4,701,000
    • -0.57%
    • 비트코인 캐시
    • 852,000
    • -3.18%
    • 리플
    • 3,100
    • -4.23%
    • 솔라나
    • 205,500
    • -3.57%
    • 에이다
    • 649
    • -2.26%
    • 트론
    • 425
    • +1.92%
    • 스텔라루멘
    • 375
    • -1.57%
    • 비트코인에스브이
    • 30,720
    • -2.01%
    • 체인링크
    • 21,100
    • -1.45%
    • 샌드박스
    • 221
    • -3.07%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