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AI강국? 뇌부터 비어간다

입력 2025-05-28 07:38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이초희

연구소 문닫고 연구원 떠나는 현실
'공돌이' 낮은 과기인 인식도 한몫
투자없이 구호만으론 헛일 깨닫길

▲이초희 부국장겸 산업부장
▲이초희 부국장겸 산업부장

10년 전쯤이었다. 회사 선배가 반도체 계약학과에 합격한 자녀를 자랑하며 한턱을 냈다. “입학만 하면 대기업 입사는 따놓은 당상” 이던 시절. 3년 이상 고된 수험생 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그만하면 좋은 결과다 싶어 기꺼이 축하를 건넸다. 주변 학부모 선배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그때만 해도 이공계 최상위권이 반도체 공학도로 향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아이가 반도체학과 붙었다”는 말은 “수학능력시험 망했나 봐”라는 얘기가 될 정도다. 대기업 연구소에 입사한 인재들이 다시 EBS를 켜고 의대 입시를 준비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의심스러운가? 대기업 연구소 출신의 모 입시 컨설턴트는 의대 진학 컨설팅만으로 수억 원대 매출을 낸다고 한다. 고참 연구원들의 한숨 섞인 말에는 한국 첨단산업의 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정답은 데이터가 말해준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부설 연구소 수는 2023년 4만4086개에서 2024년 4만1440개로 감소, 20년 만에 처음 줄었다. 연구원 수는 41만515명에서 40만7884명으로 감소했다. 기술패권의 최전선에서 뛰는 대기업 연구소는 2년 연속 쪼그라들어 734개에 그친다.

역대 모든 정권이 ‘인공지능(AI) 강국’ ‘첨단산업 육성’을 외쳤지만 정작 연구 현장은 텅텅 비어가고 있는게 현실이다.

이번 대통령선거 후보들도 예외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1순위 공약으로 내세웠고,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AI·에너지 3대 강국 도약'을 약속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국가 과학 영웅 우대 제도'를 들고 나왔다. 하나같이 그럴듯하다. 그런데 왜 연구소는 문을 닫고 연구원들은 떠나는가.

판교 테크노밸리의 한 스타트업 대표가 이런 얘기를 했었다. “의대 아니면 글로벌 빅테크, 우수한 인재들은 다 여기로 빠져나갑니다.”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막대한 연봉 차이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회사들은 한국 개발자에게 연봉 수억 원 이상을 제시한다. 국내 대기업 연구소의 두 배가 넘는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구태의연한 시스템도 문제다. 정부 과제를 따내려면 서류 작업만 몇 달이 소요된다. 정작 연구할 시간이 어디 있냐는 게 연구개발(R&D) 현장의 푸념이다. 연구가 주가 되야 하는 현장에서 서류작업이 많게는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이런 판에 누가 연구소에 남겠는가.

지난 17일 출범한 한국국가전략학회는 “이후 정권 교체 과정에서 중장기 국가 전략이 실종됐다”는 지적을 바탕에 깔고 있다. 맞는 말이다.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이 전 정권 하던 일을 뒤집기 바쁘니 연구소가 살아남을 리 없다.

한국의 과학기술 인재들이 떠나는 이유는 돈 때문만이 아니다. 사회적 대우와 인정도 한몫한다. 미국에서는 구글이나 테슬라의 엔지니어가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공돌이’ 취급을 받는다. .

의사나 판검사가 돼야 부모가 자랑스러워한다. 과학기술자는 여전히 ‘기능직’으로 취급받는다.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소용없다.

이번 대선 후보들은 모두 AI를 첫 번째 과제로 강조한다. 그런데 과연 기초연구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있을까. AI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수학, 물리학, 컴퓨터과학 같은 기초 학문이 없으면 AI도 없다. 지금까지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은 돈이 되지 않는다며 기초연구 예산을 깎아왔다. 나무는 자르고 열매만 따려는 격이다.

정치가 이를 바꿀 때가 됐다. 대선 후보들은 구호만 외치지 말고 현장을 봐야 한다. 연구원들이 왜 떠나는지, 연구소가 왜 문을 닫는지 직접 가서 물어보라. 100조 원 펀드도 좋고 AI 강국도 좋다. 하지만 그걸 실현할 사람이 없으면 헛일이다. 어렵게 길러낸 ‘뇌’가 모두 떠나고 있다. 지금이 한국이 인재양성소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일 수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달러가 움직이면 닭이 화내는 이유?…계란값이 알려준 진실 [에그리씽]
  • 정국ㆍ윈터, 열애설 정황 급속 확산 중⋯소속사는 '침묵'
  • ‘위례선 트램’ 개통 예정에 분양 시장 ‘들썩’...신규 철도 수혜지 어디?
  •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 62%…취임 6개월 차 역대 세 번째[한국갤럽]
  • 겨울 연금송 올해도…첫눈·크리스마스니까·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해시태그]
  • 대통령실 "정부·ARM MOU 체결…반도체 설계 인력 1400명 양성" [종합]
  • ‘불수능’서 만점 받은 왕정건 군 “요령 없이 매일 공부했어요”
  • 오늘의 상승종목

  • 12.0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6,050,000
    • -1.65%
    • 이더리움
    • 4,667,000
    • -1.46%
    • 비트코인 캐시
    • 863,500
    • +0.47%
    • 리플
    • 3,091
    • -3.16%
    • 솔라나
    • 204,100
    • -4.04%
    • 에이다
    • 642
    • -3.31%
    • 트론
    • 426
    • +1.67%
    • 스텔라루멘
    • 372
    • -1.59%
    • 비트코인에스브이
    • 31,130
    • +0.1%
    • 체인링크
    • 20,930
    • -2.47%
    • 샌드박스
    • 218
    • -3.96%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