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칼럼]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이 흔들릴 때

입력 2025-05-1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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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ㆍ공법학

헌법적 단죄 뒤에도 반성없는 세력
법치 흔드는 무소불위 불한당 정당
제3 선택지 나올 때 민주주의 성숙

2025년 5월은 잔인한 달이다. 연일 대통령 후보들의 지지율 추이가 나오지만 감흥도 기대도 없다. 선두를 달리는 후보의 지속적 우위를 가능케 하였을 사람들이 엄연히 현존하고 그 선호도 엇비슷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뒤쫓는 후보들의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도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여론조사에 목소리를 내지 않거나 내는 걸 거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당락을 좌우할 만큼 많다.

6월 3일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부동층 비율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익숙하지만, 상황의 심각성은 그날 그 순간까지도 마음을 정하지 못할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을 것이라는 데 있다. 지난 대선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그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사상 최악의 혐오 대선으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비상계엄, 탄핵, 대통령 파면과 내란죄 수사, 입법폭주, 사법과 법치 위협 등 전례 없는 헌정 분란이 반 년도 안되는 기간 거듭되는 상황, 악랄 요란한 진흙탕 싸움박질을 보면서 유권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60일 안에 나라의 운명을 맡길 사람을 뽑아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 몰린 것이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 후보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준비된 대통령감’이라고 주장하겠지만 믿기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했고 숙성시킨 공약이라고 강변하지만 나오는 걸 보니 납득 곤란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유권자인 국민은 억지춘향 투표의 고역을 치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2주 후 선거 당일까지도 차선이든 차악이든 누군가를 뽑아야 한다는 건 참으로 불편·불쾌한 일이다. 스트레스가 치솟는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또 어떤 난리가 벌어질까, 상상조차 두렵다.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바라며 표를 던져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늘 투표는 해야 한다고 했다. 완벽하진 못해도 민주주의와 책임정치 할 사람, 신뢰할 만한 인품, 정의와 공정, 그리고 나라 발전을 이끌 역량 등 대통령이 갖춰야 할 덕목에 비추어 그래도 비교적 나은 후보를, 그것도 가급적 표를 몰아주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임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덕목들이, 그리고 모든 후보들의 깜냥이 흔들린다. 문득 뽑아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마음을 스친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묻는 의문의 표정들이 는다. 아무도 뽑아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투표는 권리일 뿐만 아니라 공민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생각만으로 이런저런 동기로 표를 던지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진실로 끌리는 후보가 없는데도, 어느 후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음에도 정당이나 세력만 보고 표를 던지는 것은 온당할까? 대선에 후보를 낸 여야 정당들이 차린 밥상 자체가 마음에 차지 않는데도 그중 어느 한 사람을 골라야 할까?

늘 걸림돌은 ‘사표의 함정’이다. 투표지 후보자란에 곱표를 할까 아니면 아예 빈칸에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적어낼까, 또는 아예 백지투표? 무효표 운동을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지만 결국 사표가 되고 자책골이 될 뿐이다. 그러나 귀중한 한 표를 실정자 단죄용으로만 쓸 건 아니지 않은가. ‘선거일에만 왕 대접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건 뭐 왕은커녕 억지로 불려나온 건 아니라도 주권행사자 대접도 아니다. 그저 원치 않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는 처량한 유권자 신세 아닌가.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 대한 설명은 많다. 많은 정치학자,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래서 국민참여 경선을 확대해야 한다든가 대통령 후보자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 갖가지 의견들을 내놓았지만 보장도 해결도 없었다. 제도 탓일까. 아니 선거란 원래 그런 거라 체념해야 할까. 늘 유권자의 구미에 맞는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이것 아니면 저것’의 선택은 너무 잔인한 요구다. 또 제3, 제4의 선택지가 주어져도 그 선택이 유효하지 않다면 현실적으론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는 왜 제3의 길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 또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하나. 실정자에 대한 헌법적 단죄 후에도 제대로 반성도 없이 꾸물꾸물 농탕을 벌이며 추종자들이 되살아나는 판에, 그리고 법치의 밑동을 받치는 권력분립, 사법의 독립을 국민의 뜻을 들먹이며 뒤흔드는 무소불위 불한당들이 판치는 상황에서 선택을 하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5월 잔인한 달, 제대로 된 선택의 권리와 기회를 달라고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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