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습식에서 건식으로 기술 개발 속도
제조 비용 줄이고 에너지밀도 향상
배터리 업계 파일럿 라인 구축 중
배터리 성능 경쟁이 ‘소재’를 넘어 ‘공정’ 영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제조 비용을 줄이고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는 ‘건식 전극(Dry Electrode)’ 공정이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는 중이다. 국내외 주요 배터리 기업들도 앞다퉈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건식 전극은 배터리 제조의 첫 단계인 전극 공정에서 기존의 습식 방식 대신 고체 파우더를 사용하는 신기술이다. 전극 공정은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을 조합한 활물질을 집전체(금속 박막)에 코팅해 양극과 음극을 만드는 과정으로, 배터리의 용량과 직결된다.
지금까지는 활물질과 도전재, 바인더, 유기용매 등을 섞어 만든 슬러리(액상 혼합물)를 집전체에 도포한 뒤 건조하는 습식 공정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건조 설비가 필요하고, 활물질을 두껍게 바르면 전극 내 입자 이동으로 성능이 저하되는 ‘마이그레이션(Migration)’ 현상이 일어났다.
최근에는 유기용매 없이 활물질과 도전재, 바인더만을 혼합해 고체 상태로 만드는 건식 공정이 주목받고 있다. 슬러리 건조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생산 효율이 높고, 전극을 두껍게 코팅해 에너지 밀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업계에서는 건식 공정 도입 시 전극 제조 비용을 최대 30%까지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고체 파우더를 균일하게 도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아 아직 상용화된 사례는 없다. 건식 전극은 2020년 테슬라가 처음 도입 계획을 밝힌 이후 시험 생산에 들어갔지만, 수율 문제로 현재는 부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3사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주요 기업들도 앞다퉈 건식 전극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아직은 소규모 파일럿 단계에 그치지만 시장 선점을 위한 기술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창 플랜트에서 건식 공정 파일럿 라인을 운영 중이며, 2028년 양산 전환이 목표다. 삼성SDI와 SK온도 관련 설비를 마련했다.
테슬라의 메인 공급처인 파나소닉은 지난해부터 일본 공장에서 4680용 파일럿 운영을 시작해 올해 일부 양산 단계 진입이 예상된다. CATL도 올해부터 점진적 양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BYD도 2027년 양산을 목표하고 기술 개발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선 건식 전극 공정이 필수적인 선택지로 떠오르는 만큼 관련 특허 및 기술 확보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 3사는 핵심 바인더 조성 변경, 공정 조건과 장비 차별화, 크로스 라이선스 협상 강화 등을 통해 시장 선도 전략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건식 전극은 한 번에 큰 도약을 이룰 수 있는 혁신 영역으로 꼽히나 특허 분쟁 리스크와 대규모 설비 투자가 요구되기 때문에 섣불리 진입했다가 오히려 적기를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