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인수합병(M&A) 시장에 귀환했다. 삼성전자는 14일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이 보유한 플랙트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냉난방 공조(HVAC)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독일의 100년 전통 공조기기업체 플랙트를 2조4000억 원에 전격 인수한 것이다.
이번 빅딜로 삼성은 인공지능(AI) 시대의 ‘공기’로 불리는 냉각 솔루션 패권 경쟁에 뛰어들겠다는 청사진을 펼쳐든 셈이다. 2030년 140조 원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HVAC 시장은 AI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고온 고밀도의 서버 장비가 집중되는 데이터센터는 고도의 냉각 기술 없이는 작동이 불가능하다. 생성형 AI 확산과 함께 HVAC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다.
삼성의 조 단위 M&A는 2017년 전장·오디오 자회사 하만 인수 이후 8년 만이다. 반도체와 가전, 스마트폰 등 기존의 내재화 전략에 머무르지 않고, 4차산업에 필요한 핵심역량을 과감히 사들이는 적극적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관리의 삼성’이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팀(TFT)과 경영지원실, 디바이스경험부문(DX) 내 공조사업부 등 국내파가 만든 첫 빅딜이다.
이재용 회장이 AI, 바이오, 전장, 로봇 등 미래 기술 확보를 위해 직접 결단을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성장 돌파구 마련이 시급한 이 회장은 레인보우로보틱스(로봇), 옥스퍼트 시멘틱 테크놀로지스(AI), 소니오(메드텍), 룬·마시모 오디오사업부(오디오·전장) 등 미래 성장 산업 관련 기업 인수를 주도해 왔다.
삼성은 누가 뭐래도 ‘수출 한국’을 상징하는 간판 기업이다. 삼성이 포효하면 국가도 포효하고 삼성이 고전하면 국가와 민생도 어려움을 겪는 구조다. 삼성의 존재감과 경쟁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근래 커지고 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삼성이 국내외 패러다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다. AI의 핵심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에서 대만 TSMC에 치이는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TV, 가전, 스마트폰 등에서도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이 회장도 앞서 3월 임원 교육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며 쇄신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번 M&A가 좋은 기회다. ‘다시 뛰는 삼성’의 견인차가 돼야 한다. 그래야 국가 경제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삼성과 이 회장의 분발만 촉구하고 말 일은 아니다. 지난 10년은 삼성의 잃어버린 시간이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두 차례 구속돼 560일 동안 수감됐고, 185차례 재판에 출석했다. 미래 먹거리를 찾는 기업 본연의 과제는 제쳐둘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다시 정치사회 난기류에 휘말리고 반기업·반시장 여론몰이의 희생양이 된다면 ‘초격차 삼성’은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국가 경제도 글로벌 경쟁에서 영구적으로 도태될 수 있다. 걸핏하면 반기업 바람에 편승하려 들고, 때론 그런 바람을 부채질하는 정치 세력들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