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비기축통화국 평균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11일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점검보고서’ 4월호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올해 54.5%에 달할 전망이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비기축통화국 11개국의 평균치는 54.3%다.
IMF 예측이 적중하면 우리 부채 비율은 올해 처음으로 비기축통화국 평균을 넘어서게 된다. ‘부채 공화국’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일반정부 부채는 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활용하는 지표로, 국내에서 주로 쓰는 국가채무(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회계·기금의 부채)에 비영리공공기관 부채를 포괄하는 더 넓은 의미의 정부 채무다.
한국은 과거 압축성장의 역사를 쓰면서도 나랏돈을 소중히 써 재정에 관한 한 최우량 국가군에 속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2%대였다. 20여 년 전 IMF 체제는 건전 재정의 저력에 힘입어 조기에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국면도 그렇게 극복했다. 부채 비율은 그후 줄기차게 상승했지만 2016년(39.1%)까지만 해도 비기축통화국 평균(47.4%)보다 훨씬 낮았다. 그다음부터가 문제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국가 채무를 409조 원 불렸고, 윤석열 정부는 ‘건전 재정’을 강조하면서도 2025년 예산까지 3년 동안 209조 원을 더 불렸다. 결국, 방만 재정의 폐해를 더 감출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IMF는 한국 부채 비율이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내다본다. 2030년 전망치는 59.2%다. 같은 시점의 비기축통화국 평균치(53.9%)를 한참 웃돈다. 이런 통계에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의 최우등생이 어쩌다 낙제생 처지로 내몰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한국이 최악인 것은 아니다. 일본(231.7%), 미국(128.2%), 영국(106.1%) 등 훨씬 심각한 국가부채 사례가 수두룩하다. 하지만 주요 7개국(G7)급과의 수평 비교는 어리석고 경솔하다. 미, 일 등은 기축통화국이다. 기본 여건이 전혀 다르다. 한국의 비교 대상은 비기축통화국일 수밖에 없다. 한국이 그 그룹의 중간도 못 가게 됐다는 IMF 분석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과거와 같은 위기가 재발하면 국제적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IMF 경고만이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2030년대 잠재성장률을 0.7%로 추정했다. 2040년대 예상치는 0.1%다. 제로 성장 시대가 눈앞이란 얘기다. 이에 대처하려면 완화적 통화·재정 정책으로 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 곳간 사정은 더 심각해지게 마련이다. 국가적 현실이 이렇다면 6월 대선을 앞두고 재정준칙 법제화 공약을 내놓는 목소리라도 들려야 한다. 하지만 유력 대선주자들은 ‘퍼주기’ 공약만 앞다퉈 내놓고 있다. 비기축통화국 평균을 넘어선다는 국가부채 문제를 대체 어찌 보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표밭만 보이고 부채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