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조명받는 말이기도 한데요. 중국이 이른바 한한령(限韓令), '한류 금지령'이라는 빗장을 풀 기미를 보이는 데 따른 겁니다.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감은 사실 최근 5년간 줄곧 나왔습니다. 한중 수교 30주년과 문화 교류의 해를 맞은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까지 겹치면서 기대감이 높아졌고요. 2023년에는 한국으로의 단체 여행을 금지하는 금한령(禁韓令)이 해제되면서 "이젠 진짜다"라는 반응이 나왔는데요. '최종_진짜 최종' 버전이라고 할까요. 이번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일고 있는 기대감은 최근 들어 가장 높은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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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의 시발점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중국은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반발, 한국 음악·드라마·영화 등 콘텐츠를 제한하는 비공식적 보복 조치인 한한령을 내렸습니다. 한국산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는가 하면, 중국 관광객들의 한국 방문도 뚝 끊겼죠.
실로 2016년 7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중국 관광객은 사드 배치 이전과 비교해 65.3% 급감했습니다. 명수로 따지면 898만9000명이나 줄어들었는데요. 이로 인한 손실은 약 21조 원으로 집계된 바 있습니다.
국내 문화산업계의 고민도 깊어지기만 했습니다. 중국 시장은 가요·방송 콘텐츠 업계의 블루 오션이나 마찬가지였는데요. 당시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중국은 한류 콘텐츠 수출액 비중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최대 한류 소비 국가로 나타났습니다. 국내 방송산업의 중국 수출액은 2012년 1100만 달러에서 2014년 5693만 달러로 급성장하는 중이었죠.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중국 정부는 한 번도 한한령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없습니다. 오히려 "한류 금지령이란 건 없다"며 존재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인해왔죠. 세부적인 법령, 행정명령을 마련한 게 아니라 중국 내 방송사, 기업, 플랫폼이 한국 콘텐츠 심의를 차일피일 연기하거나 중단하고, 예능이나 드라마에 한국 연예인을 기용하지 않으며 K팝 공연에 대해서도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는 등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제재를 가했죠. '애초 제한한 게 없으니 해제할 것도 없다'는 입장도 고수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답답함도 '진짜' 해소되는 모양샙니다. 특히 가요계에서 훈풍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소소한 규모의 팬 이벤트를 넘어 페스티벌에 출연하고 단독 콘서트를 진행하는가 하면, 대규모 합동 공연 개최 소식까지 들려오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죠. 이에 업계에서는 "사실상 한한령은 해제된 셈"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2월 그룹 트와이스는 중국 상하이에서 신보 발매 기념 팬 사인회를 진행했습니다. 대만 출신 멤버 쯔위가 2015년 한국 방송에서 대만 국기를 들었다가 중국 네티즌들의 반감을 산 이후 9년 만에 중국에서 진행한 행사라 더욱 화제를 모았는데요. 이어 아이브도 3월 상하이에서 팬 사인회를 열고 200여 명의 팬들과 만났죠. 멤버 가을은 한 중국 패션 매거진 창간호 표지도 장식했습니다.
최근 두 번째 미니앨범 '팝팝'(poppop)을 발매한 NCT 위시는 사전 프로모션 격으로 상하이를 방문해 현지 매체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요. 이 자리에는 넷이즈, 시나닷컴, 소후닷컴, 텐센트뉴스, 동방망, 중국문오망, 중국오락망 등 중국 유력 언론과 엔터테인먼트 채널 약 60개 매체가 참석해 뜨거운 취재 열기를 드러내 눈길을 끌었죠.
지난달 김재중은 중국 충칭에서 스페셜 팬미팅을 열었고요. 아이돌은 아니지만(?) 힙합 그룹 호미들이 청두에서 무대에 올랐는데요. 중국 기획사가 먼저 공연 제안을 해왔고, 당국이 허가를 내줬습니다. 한국 국적 가수가 중국 무대에 선 건 한한령 조치 이후 처음이었죠.
장하오, 리키 등 중국인 멤버가 포함된 제로베이스원은 수도인 베이징에서 23일에 걸쳐 다섯 번째 미니앨범 '블루 파라다이스'(BLUE PARADISE) 팝업스토어를 개최했습니다. 트리플에스는 베이징에서 열린 '2025 스트로베리 뮤직 페스티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죠. 다만 무대에 오른 멤버들은 중국, 일본 등 글로벌 멤버들뿐이긴 했습니다.
최근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시선이 한군데로 쏠렸는데요. 한국 아이돌 그룹의 단독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 때문이었죠.
C9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그룹 이펙스가 이달 31일 중국 푸저우에서 단독 공연 '청춘결핍 인 푸저우'를 연다고 밝혔는데요. 멤버 전원이 한국 국적인 K팝 그룹이 현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것은 2016년 한한령 이후 9년 만에 처음입니다.
이펙스의 이번 중국 공연은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시작한 '청춘결핍' 투어의 하나입니다. 이들은 다음 달 마카오와 대만 타이베이에 이어 중국 푸저우를 찾을 계획이죠.
힙합 가수보다 파급력이 큰 아이돌 그룹, 그것도 팬미팅이나 팬 사인회처럼 소규모 팬 이벤트가 아닌 정식 단독 콘서트가 열리게 되면서 앞으로 정상급 K팝 스타들의 중국 공연 시장이 열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도 힘이 실렸습니다.
여기에 '드림콘서트'도 중국 하이난성에서 펼쳐질 예정입니다. 가요 제작자들의 모임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에 따르면 드림콘서트는 9월 26일 싼야 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열릴 계획인데요. 드림콘서트는 1995년부터 당대 인기 가수들과 함께 해 온 대규모 K팝 축제입니다. 이번 드림콘서트 규모는 약 4만 명으로 계획돼 있죠. 출연진은 아직 조율 중인데요. 이달 말께 라인업이 확정된다는 전언입니다. 만약 계획대로 공연이 성사된다면 중국의 한한령 이후 가장 큰 규모의 K팝 공연이 됩니다. 이번 한한령 해제에 남다른 기대가 쏠리는 이유죠.
또 지드래곤은 중국 상하이에서 '위버맨쉬'(Übermensch) 미디어 전시회를 엽니다. 한한령이 한창이던 2020년에도 중국 유명 음료 브랜드 광고 모델로 발탁되는가 하면, 웨이보 등 현지 플랫폼에서 압도적인 화제성을 보였던 만큼 지드래곤의 상하이 전시회에도 뜨거운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입니다.

한한령 해제 분위기는 특히 최근 가요계에 반가운 소식입니다. K팝을 선두로 한류 열풍이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 K팝 위기론이 대두된 것도 사실인데요. 대표적인 '인기 바로미터' 음반 판매량을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K팝은 2023년 사상 최초로 1억 장 판매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1년 만인 지난해엔 고개가 꺾여 1억 장 돌파에 실패했죠. 지난해 연간 음반 판매량은 9328만 장으로 전년 대비 19.4%가 감소했습니다. 2015년 이후 줄곧 성장세를 그려오던 K팝 음반 판매량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죠. 음반 판매는 기획사 전체 매출의 30~50%를 차지하는 절대적 지표로 통합니다.
일단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톱 그룹의 부재가 K팝 위기론의 첫 번째 이유로 꼽힙니다. 이후 등장한 차세대 그룹들은 팬덤과 대중, 모두를 사로잡는 영향력을 아직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분석인데요. 일본, 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의 판매 감소도 대외적 요인으로 거론되죠.
이 같은 상황에서 한한령 해제는 K팝 인기에 다시금 힘을 싣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이어집니다. K팝 시장은 한한령 속에서도 온라인 채널을 통한 저변 확대와 현지 팬덤의 충성도를 자랑해왔습니다. 여기에 엔터테인먼트 업계 역시 중국 시장에만 의존하지 않고 북미, 유럽 등지에서 활발한 프로모션에 나서는가 하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 이어 라틴 아메리카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리고 있는데요. 여기에 더해 한한령까지 해소된다면 소비 회복뿐 아니라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플랫폼과 한국 기획사의 새로운 협력 모델이 등장하는 식으로 말이죠. 특히 대형 공연장이 즐비한 중국인 만큼 폭발적인 공연 및 MD 수익 증가까지 기대해볼 법합니다. 다만 정치 상황에 따라 중국의 방침이 급변할 수 있는 만큼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조용하지만 분주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죠.
이환욱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과거 사드 사태 이후 비공식적으로 한한령을 선언했던 G2 중국의 정책 방향성이 작년부터 조금씩 선회하고 있다"며 "중국 시장의 개방은 공연 부분에서 최소 20% 이상의 연간 BO(판매 가격과 판매량을 곱한 매출액) 확대가 가능하고, BO 대비 최소 30% 수준의 투어 MD 판매 실적만 추가해도 주요 엔터사의 연결 실적 기준 15% 상향 조정은 기 확보된 상황이라 판단된다. 공연 40% 확대와 투어 MD & 기획 MD 50% 가정 시 30% 상향 조정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