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만 위원 참여 공정성 높여
사고예방 등 경영진 책임도 확대
업계 "제재·면책 판단 기준 모호"

1300억 원 규모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손실 사건, 반복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장애, 외화 회계처리 오류, 횡령사고. 최근 1년 새 증권사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대부분 단순 실수와 내부통제 미비, 불명확한 책임 구조에서 비롯됐다. 사고가 터져도 실무자 몇 명의 문책으로 끝났고, 경영진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는 7월부터는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이 대폭 강화된다. 증권사들의 조직 특성을 고려해달라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모든 책임을 CEO에게 귀속 시키기로 했다. 다만 최종 제재 시 별도 위원회를 신설해 심사 절차의 공정성을 높이기로 했다.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책무구조도 도입 후 제재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중대성 사전검토 위원회(이하 중검위)'를 설치하기로 했다. 제재 과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사관이 중대한 위반 사항을 발견할 경우 단독 판단이 아닌 별도 내부 심의 기구인 중검위를 거쳐 위법행위 요소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듣고 제재를 결정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관이 검사를 통해 위법 행위를 확인하면 위법행위 고려요소를 살펴 제재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검사반의 결과가 저촉되는 것이 있는지 중검위에 부의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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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검사관이 판단한 위법행위 고려요소에 대해 중검위의 의견을 듣고 회사 측에 검사 의견서를 발송하고 상당한 주의 여부를 판단해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최종 제재를 결정한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위반할 경우 '위법행위의 중대성'과 '상당한 주의 여부'를 중심으로 제재 수위를 정한다. 최종제재를 결정하기 전 외부 인사의 시각을 반영해 제재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금감원은 통상 위법행위 고려요소를 기준으로 중대한 위법성이 인정되면 금융당국이 직접 책임 규명 절차를 개시한다. 이어 행위자 책임 고려요소를 기준으로 상당한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를 고려해 제재를 감경하거나 면제할지를 판단한다.
중검위는 외부 보안을 이유로 민간 인사의 직접 참여는 제한한다. 다만 독립적 시각을 보완하기 위해 금감원 옴부즈만 위원을 포함하기로 했다. 현재 7기 옴부즈만에는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소비자), 나상용 법무법인 율우 대표변호사(은행), 구정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중소서민), 박소정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보험), 김정훈 한국거래소 공익대표 사외이사(금융투자) 등이 활동 중이다.
금융투자업계 책무구조도도 은행, 지주와 마찬가지로 'CEO 단독 책임' 체계로 확정했다. 앞서 증권사들은 은행과 다른 중층적 조직 구조를 고려해 책임을 하위 임원에게 분산하는 방안을 요청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은행이 은행장·부행장 중심의 평평한 구조를 갖는 데 비해, 증권사와 보험사는 사장-부사장-전무-상무-이사로 이어지는 계층 구조로 돼 있다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조직 형태와 무관하게 최종 책임은 CEO가 져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아도 제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부통제 미비나 미이행만으로도 경영진을 제재 할 수 있다. 사고 대응을 넘어 사고 예방책임까지 묻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책무구조도 도입을 두 달여 앞두고 제재 기준의 모호성과 면책 판단의 불확실성을 문제로 지적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책임소재를 따지겠다고 하지만, 사건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지점 몇 곳에서 발생했는지, 사전에 경고가 있었는지 등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라며 “결국 당국이 사후적으로 판단하게 되면 오히려 법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당국은 과거 ‘100개 지점 중 20곳 이상 사고 발생’ 또는 ‘피해액이 50억 원 이상’일 경우 일정 수준 이상 제재를 하겠다는 식의 계량적 기준을 검토했다. 하지만 이해충돌과 형평성 논란으로 도입이 무산됐다.
면책 기준 역시 불투명하다. 당국은 임원이 관리 의무를 다했다는 증빙 자료(경고 이메일, 회의 기록 등)를 제출하면 면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어느 수준의 조치가 충분한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결국 1호 제재 사례가 나와야 기준이 정립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