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 위해선 ‘빠름’만으론 안돼
개방·유연성에 회복력 더해야 유지

SK텔레콤은 최근 대규모 유심정보 해킹 사태로 인해 예상치 못한 큰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훼손된 신뢰와 평판을 회복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가입자뿐 아니라 기업도 해킹의 피해자라는 측면에서 초기에 보다 빠르고 투명하게 대응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보보호와 같이 비용으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이 실제로는 중요한 역량이고 자산이라는 점을 깨닫고 인센티브로 반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태를 단순히 기업의 위기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가 디지털 경쟁력을 점검하고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글로벌 디지털 정부 지수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디지털 신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본인확인이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경우 초래될 경제적, 사회적 파장을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학습하고 대비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연결되면 연결될수록 이런 사고의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파장을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우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빠른 대응책을 내놓기가 어려워지게 된다. 따라서 사고가 일어날 때 파장이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구조를 미리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중앙집권적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효율적이지만 중앙에서 발생했을 때 사고의 피해 범위가 대단히 넓고 회복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지나치게 분권화된 네트워크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전체적인 시스템 관점에서 기본 인프라는 중앙에서 관리하지만, 다양한 민간서비스가 공유된 인프라 속에서 유연하게 연결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와세다대 디지털 정부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디지털 정부의 행정 및 금융 개혁 기여도 부문과 다양한 온라인 기반 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 창출 부문에서는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최근 공공데이터 개방 확대를 통한 혁신을 도모하고 있지만, 여러 제약으로 공공기관조차 자기 데이터에 접근하지 못하기도 한다. 국가가 어디까지를 디지털 공공재로 활용하고, 국가와 기업, 그리고 또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협력하여 이를 보호할지 거버넌스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는 플랫폼의 큰 틀을 마련하고, 그 위에서 다양한 민간 서비스와 혁신이 시도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 다소의 중복이 있더라도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플랫폼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번 해킹 사태에서도 간편인증이라는 대안 덕분에 금융권이 스마트폰 인증의 위험을 일부 회피할 수 있었던 점을 기억하고, 특정 방식에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네트워크의 대안 경로를 유지하는 정책적 유연성이 필요하다.
연결성이 높아질수록 중요도가 높아지는 반면 공격에 대한 취약성도 증가할 수 있으므로 방어도 중요하지만 회복에 보다 중점을 두는 전략적 방향 설정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로 연결된 참여자들에게 취약성과 발생한 문제에 관한 정보를 빠른 시간 내에 투명하게 불충분하더라도 공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보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책을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 신뢰를 구축한다면 이는 미래의 많은 산업이 배태되는 토양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디지털 편의성과 혁신 속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AI, 가상자산, 메타버스 같은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빠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회복력과 신뢰성, 그리고 개방성이 결합될 때, 비로소 디지털 강국으로서의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완성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