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이름이 '스포일러'라고?…콘클라베에 담길 '신념의 무게' [이슈크래커]

입력 2025-04-2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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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8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어린이의 이마에 입 맞추고 있다. (AP/뉴시스)
▲2023년 3월 8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어린이의 이마에 입 맞추고 있다. (AP/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향년 88세를 일기로 선종했습니다.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페렐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아침 7시 35분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발표했는데요.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앙, 용기, 보편적 사랑을 갖고 복음의 가치를 살아가라고 우리를 가르쳤다"며 "그는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외된 이들을 지지했다"고 밝혔죠.

프란치스코 교황은 호흡기 질병으로 2월 중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의료진은 최소 2개월의 휴식을 권장했지만, 교황은 지난달 퇴원한 뒤에도 바쁜 행보를 이어갔죠. 바로 전날인 부활절 대축일에는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을 만나고 부활절 메시지를 전했는데요. 이후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계 각지에서 애도와 기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부터 12년 동안 전 세계 가톨릭 신자 14억 명을 이끌어왔습니다. 그의 선종에 따라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사도좌 공석'(sede vacante) 상태가 됐는데요. 사도좌는 으뜸 사도이자 초대 교황이던 베드로에게 예수가 맡긴 자리로, 사도좌 공석은 베드로를 후계하는 교황이 선종이나 사임으로 공백인 기간을 뜻하죠.

무엇보다 '콘클라베'에 적지 않은 관심이 쏠립니다. 영화 이름으로도 익숙한 '콘클라베'.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절차를 뜻하는 용어인데요. 가톨릭의 온화하고 따스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콘클라베에서 흐를 전망입니다.

▲영화 '콘클라베'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주)디스테이션)
▲영화 '콘클라베'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주)디스테이션)

다소 극단적인(?) 콘클라베의 유래…세부 절차는?

콘클라베는 이르면 다음 달 초 시작될 전망입니다.

교황 선출 규정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07년과 2013년 개정한 교황령 '주님의 양 떼'(Universi Dominici Gregis)를 따릅니다.

전통적으로 콘클라베는 교황 선종 이후 15일간의 애도 기간을 거친 뒤 시작됐는데요. 다만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3년 자진 사임하기 직전 추기경들 결정에 따라 콘클라베를 더 빨리 시작하거나 교황의 선종이나 사임 상황을 기점으로 최대 20일까지 미룰 수 있도록 교황령을 개정한 바 있습니다. 이에 정확한 개시 날짜는 달라질 수 있고요. 이번 콘클라베 시작일 역시 추기경 회의에서 확정될 예정이죠.

콘클라베의 유래는 생각 외로 평화롭지만은 않습니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다'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13세기에 처음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탈리아 로마 인근 비테르보 지역에서 1268년 시작된 선거가 5년이나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답보 상태를 보이자, 시 당국과 주민들이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추기경들을 한 곳에 감금하고 빵과 물만 주면서 조속한 선출을 독려했다고 하죠. 추기경단 유폐를 통한 교황 선거는 탁월한 효과(?)를 인정받으면서 제도화됐고, 오늘날 콘클라베로 이어졌습니다.

콘클라베는 19세기 후반부터 시스티나 성당에서 개최돼왔습니다. 과거엔 선거인 추기경들이 아예 성당 안에 격리된 채 투표했지만, 지금은 교황청 내 방문자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지내죠.

여기에 참가할 수 있는 선거인은 나이가 정해져 있습니다. 사도좌가 공석이 되기 전날 기준 만 80세 미만인 추기경들이 대상인데요. AFP 통신에 따르면 현재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은 대륙별로 유럽이 53명, 북미권 20명, 아시아권 23명, 아프리카 18명, 남미 17명, 오세아니아 4명 등 135명이라고 합니다.

투표 과정에서 이들은 완전히 격리됩니다. 이들이 지내는 산타 마르타의 집은 외부에서 아예 들어갈 수 없고요. 추기경들은 투표할 때도 정해진 버스를 타고 시스티나 성당으로 향하죠. 콘클라베 기간에는 전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신문조차 받아 볼 수 없습니다. 외부와의 소통이 아예 금지되는 건데요. 이 과정에는 바티칸 경찰까지 동원됩니다. 전자 보안장치를 동원해 규정 준수 여부를 감독하죠.

별도의 공식 후보는 없습니다. 선거인 각자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내는 방식인데요. 콘클라베 첫날을 제외하고 매일 두 번씩 진행되죠. 전체 선거인의 3분의 2 이상을 득표한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투표를 계속합니다.

만약 장기간 투표했는데도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최다 득표자 2명을 놓고 결선 투표를 벌이는데요. 이때도 3분의 2 이상을 득표해야 합니다. 다만 20세기 들어 투표 기간은 평균 사흘에 그쳤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콘클라베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선출됐죠.

여기서 당선자가 나오면 피선자에게 교황직 수락 여부를 묻고, 동의한다면 '베네딕토 16세'나 '프란치스코'와 같은 교황 이름도 정해집니다. 만약 교황 자리를 고사한다면? 간단합니다. 모든 절차가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죠.

외부와의 소통이 완전히 차단되는 만큼 콘클라베 결과를 알리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교황이 선출됐다면 성당 굴뚝으로 '흰 연기'를 피워 올리는데요. 투표 시마다 용지는 소각하도록 규정돼 있어 굴뚝으로 검은 연기가 나오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뜻이죠.

콘클라베가 종료되면 선거인 중 수석 추기경이 밖에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새 교황이 탄생했다는 뜻)이라며 새 교황의 선출 사실과 이름을 공포하고요. 이후 새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2013년 3월 13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추기경들이 콘클라베 둘째 날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를 이어가는 가운데,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뉴시스)
▲2013년 3월 13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추기경들이 콘클라베 둘째 날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를 이어가는 가운데,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P/뉴시스)

교황 이름에서 드러난다…콘클라베, '신앙심'이 전부?

흥미로운 점은 콘클라베에서 중요한 것이 '신앙심'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치적인 복선, 이념적으로 나뉜 세력 간의 계산이 진하게 깔려 있는데요. 추기경단부터 이념적으로 나뉘어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성소수자 문제, 동성혼, 여성 사제, 낙태 등 사안에 대해 보수 진영과 개혁 진영이 의견 차이를 보입니다.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개혁파로 분류되죠. 실로 그는 가톨릭에서 금기와 같은 동성애, 낙태에 상대적으로 포용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로 신을 찾는다면 누가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건 프란치스코 교황의 어록으로 기록되죠. 가톨릭 사제가 동성애 커플을 축복할 수 있게 허용했고, 여성을 처음으로 교황청 장관에 임명했으며, 낙태·재혼자에 대한 성체성사 허용, 성직자의 독신 의무 등에 대해서도 진보적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반면 내부 반발은 극심했습니다. 보수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는 신자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며 라틴어로 진행되는 전통 미사 집전을 제한하자 거세게 저항했는데요. 일각에서는 이 결정을 "야만적 행위"라며 강한 어조로 성토하기도 했죠.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수파의 맹렬한 반대에도 개혁 행보를 흔들림 없이 이어갔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세상과 교회의 중심으로 이끌기 위해 애썼습니다. 순금 가슴 십자가 대신 철제 십자가를 착용했고요. 호화로운 관저 사저가 아닌 일반 사제들이 묵는 공동숙소에서 그들과 함께 살았죠. 자동차 퍼레이드를 할 때면 작은 중소형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그도 그럴 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의 성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길을 따르겠다며 교회 역사상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최초의 교황입니다. 사실상 교황 이름에 자신의 이념과 정체성을 반영한 건데요. 차기 교황의 이름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죠.

프란치스코 교황의 전임자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의 시기 교회를 이끈 베네딕토 15세를 기리며 이름을 정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혼란 속에서도 신앙과 교리의 중심을 지키겠다는 원칙주의적 신념이 반영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는데요. 실로 그는 '신의 로트와일러(독일산 맹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교회의 신앙과 교리를 지키는 데 투철했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즉 교황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교황이 될지 드러내는 신념의 메시지이자 콘클라베 이후 전 세계에 보내는 첫 영적 신호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문서화 인쇄 폰트 크기[교황 선종] 또다시 '변화' 택할까…차기 유력주자로 필리핀 추기경 부상송고시간 2025-04-22 11:51텔레그래프 "'아시아의 프란치스코' 타글레 선두…67세 젊은 나이는 약점"외신, 20여명 후보군 거론하며 '안갯속' 판세 소개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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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나올까…프란치스코 교황도 '최초 비유럽계'

공식 후보가 없는 데다 콘클라베가 '이변의 장'인 만큼, 외신에서 점치는 후보군만 20명 이상입니다. 그야말로 안갯속 판세인 거죠.

초미의 관심사는 과연 차기 교황으로 비(非)백인의 아시아인 또는 아프리카인 추기경이 선출될지 여부입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선두 주자가 첫 아시아 출신 교황이 될 수 있다"며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67·필리핀) 추기경을 유력 후보로 꼽았습니다. 로이터 통신도 타글레 추기경에 대해 "교황이 되기 위한 모든 자격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는데요. 그의 별명은 '아시아의 프란치스코'라고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쾌하면서도 겸손한 성품, 진보적인 성향을 닮아 붙은 별명인데요. 그는 2019년 교황청 인류복음화성(현 복음화부) 장관으로 임명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타글레 추기경에게 교황청과 관련한 경험을 쌓게 하려는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왔다고 로이터는 전했죠. 다만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가 약점으로 꼽힙니다.

장마르크 아벨린 추기경(66·프랑스)은 이민자와 이슬람계와의 관계 등에 있어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념적으로 가까운 것으로 여겨지고요. 2014년 교황청 연설에서 교회가 성소수자를 더 포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연설한 마리오 그레치 추기경(68·몰타)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진한 개혁을 뒷받침한 인물로 간주돼 조명받고 있습니다.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70·이탈리아)은 교황청의 외교관 출신으로 중도적 성향으로 여겨지는데요. 낙태·성소수자 문제 등을 둘러싼 교회의 이른바 '문화 전쟁'의 최전선에 서거나 시끄러운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때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것을 두고 "인류의 패배"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죠.

조셉 토빈 추기경(72·미국)은 가톨릭 주요 수도회인 구속주회의 리더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동했으며 이탈리아어·스페인어·프랑스어·포르투갈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데요. 로이터는 "세계의 추기경들이 첫 미국인 교황을 선출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만약 선출한다면 토빈 추기경이 가장 가능성이 큰 후보"라고 짚었습니다.

한국 가톨릭계 안팎에서는 유흥식 추기경(73)의 교황 선출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깝게 소통한 측근으로 꼽히는데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에 대한 애정, 유 추기경의 의지가 맞물려 2023년 9월 가톨릭 성지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 한국 최초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의 성상이 세워지기도 했죠. 아시아 성인의 성상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된 건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교황은 이탈리아 중심의 유럽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최초의 비유럽계 교황이었죠. 이에 이번 콘클라베에서도 이변이 이어질지 주목되는데요. '누가 교황이 될 것인가'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은 '어떤 교황이 될 것인가'입니다. 가톨릭계도 다음 교황이 정할 이름을 숨죽여 기다릴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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