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시각 장애인의 사랑과 모험

입력 2024-11-2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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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립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명예교수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 티무 니키 감독, 202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이 영화(‘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다발성 경화증의 결과로 앞을 못 보고 하반신이 마비된 남자 야코의 이야기다. 영화가 처음 시작하면 주연 배우들과 주요 스태프들의 이름이 점자로 나온다. 그리고 그걸 컴퓨터 목소리가 읽어준다. 이 시작부터 신선했다. (그 컴퓨터 목소리는 이후에 수시로 나온다. 야코가 자기 핸드폰을 조작할 때 피드백하거나, 메시지 내용을 읽어준다.)

정기적으로 방문 요양사가 와서 도와주지만, 야코는 거의 매일 혼자 집안에 갇힌 것처럼 지낸다. 라디오 방송도 듣고, 가끔 온라인 도박도 하지만 그의 가장 큰 낙은 인터넷으로 만난 여자 친구 시르파와 통화하는 것이다. 시르파도 중병을 앓고 있다. 하루는 그녀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만나러 가기로 결심한다. 요양사가 다음 주에 도와줄 수 있다고 했지만 야코는 혼자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나 친절하게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강도를 만나 고초를 겪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의 주관적 경험을 잘 표현했다는 것이다. 보통 영화에서는 인물이 쳐다보는 대상과 그 인물의 표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건 어렵다. 가령 엄마가 아이를 보고 있는 장면에서, 둘을 함께 화면에 잡으려면 엄마의 얼굴 클로즈업을 보여줄 수 없다. 그런데 야코는 시력을 상실했으므로 (세상 전체가 뿌옇게 보인다) 주로 소리에 집중한다. 그리고 소리는 앞이든 뒤든 별로 상관없다. 그래서 그의 표정을 가까이 보여주면서 그가 집중하는 뒤쪽의 사물을 (뿌옇게) 보여줄 수 있다. 그 결과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 영화는 아직 못 봤어도, 시각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는 아마 한둘 본 적 있을 것이다. 그 주인공이 낯선 자의 움직임에 불안해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그는 소리만 듣고 형체는 못 알아보지만, 관객에겐 다 잘 보인다. 그런데 관객에게도 그 낯선 자가 뿌옇게 보인다고 하자. 그러면 주인공의 불안에 훨씬 더 이입되지 않겠는가. 이 영화가 바로 그렇다. 특히 중반 이후 강도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서스펜스가 훌륭하다.

이 영화가 마음에 든 또 하나 이유는 주인공 야코 역을 맡은 배우가 실제로 다발성 경화증 환자라는 것이다. 주인공이 장애인인 영화를 보면,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대개 눈에서 비장애인이라는 게 드러난다. 그래서 몰입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건 그런 문제가 없다.

이 영화의 제목이 다소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다. 영화광인 야코는 왜 ‘타이타닉’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가? 영화 중에 설명이 나오긴 한다. 초반에 시르파와의 통화에서, 그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터미네이터’ 같은 액션 영화는 좋아하지만 ‘타이타닉’은 ‘비싼 똥 덩어리’라고 욕한다. 그런 영화적 취향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의 삶을 주제로 한 이 영화의 제목으로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필자의 짐작은 그 영화가 너무 큰 비극, 그것도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험한 만큼 보인다고 한다. 야코는 아마 마음이 아파 그 영화를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똥 덩어리’라고 욕한 것도, 비극이 구경거리인 세상에 대한 분노의 표현일 수 있다.

중반 이후에 스릴러처럼 진행되는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인물과 장소가 한정되어 지루할 수 있는데, 재치 있는 대사가 그걸 상당히 만회한다. 하나 예를 들자면, 야코가 늘 (하반신이 정상이 되어) 달리는 꿈만 꾼다고 불평하니까 시르파가 ‘당신의 꿈을 개선할 방법이 있어요’라고 말한다. 야코가 뭐냐고 묻자 ‘내 제안대로 하면 당신의 꿈이 조금 젖을 수 (성적인 의미 내포) 있어요’라고 궁금하게 한다. 야코가 다시 묻자, 그녀가 답한다, ‘타이타닉을 봐요.’ (물에 빠져 젖는 꿈을 꿀 수 있다는 뜻.)

위에 말했듯이 이 영화에선 주인공 야코의 얼굴 외엔 모든 게 뿌옇다.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얼굴에도 초점이 맞는다. 바로 시르파다. 둘은 포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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