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밸류업(value-up) 역행하는 反시장적 이사 충실의무 확대

입력 2024-07-2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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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모든 주주이익 동시 보호는 불가능
기업사냥꾼도 대상…이치에 안맞아
배임죄 완화해야 기업가정신 살아나

상법개정 논의는 금년 초 윤석열 대통령이 “소액주주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할 수 있는 상법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발언에 의해 추동됐다. 후속 조치로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시장경제를 주창(主唱)하지만 의식은 ‘경제민주화 망령’에 상당 부분 갇혀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기업의 사업구조 개편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수주주의 이익이 침해되고 있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주주를 지배주주와 소액주주로 갈라치기하고 있는 것이다. 상법개정의 목적이 ‘오너경영 중심의 기업 지배구조 혁파’로 귀결되면 윤 대통령 스스로 ‘좌파 프레임’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맞다면 논리적으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넘어 이해관계자의 이익’까지 보호해야 한다. 그만큼 상법개정 논의는 포퓰리즘에 경도되어 있다.

상법개정에서 ‘소액주주 우대’ 취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우선 ‘소수주주와 지배주주의 이익’이 별개일 수 없다. 그리고 공정거래법, 상법, 자본시장법 등의 촘촘한 규제로 지배주주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탈할 여지는 없다. 그렇다면 소수주주가 지배주주보다 더 보호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는 ‘1주 1의결권’의 주주평등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다.

물론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는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물적분할’이 그 범주에 속한다. 그러면 부족하지 않게 방어수단을 설계하면 된다. 2022년에 제도화된 ‘주식매수청구권’과 물적분할과 관련된 ‘상장심사·공시 강화’ 등이 안전장치이다. 개연적 피해 방지를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해 상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치명적 정책 과용이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휘두르는 격이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까지 확대되면 대표소송이나 업무상배임죄 처벌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회사 성장을 위한 구조조정이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소수주주가 이사들이 내린 의사결정이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결정’이었다고 소송(訴訟)을 제기하면 이를 피할 수 없다. 이사는 법정에서 모든 의사결정에 대해 “소수주주를 포함한 일반주주에의 영향을 검토했고 보완책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사의 과다한 입증책임 부담은 그 자체가 희소한 경영자원의 낭비이다.

기업에 투자하는 주체는 ‘장기투자자, 단기투자자,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기금, 국내외 행동주의펀드 및 경영권 공격세력, 일반투자자’ 등 다양하다. 각각 다른 동기와 이유로 주식을 보유하는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주주의 이익을 비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상법개정안 대로라면 엘리엇펀드 등 기업사냥꾼의 이익도 보호해야 한다. 그 자체가 블랙 코미디다.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의견이 다르면, 지분에 따른 다수결 원칙을 적용되면 된다. 미국 모범회사법은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믿는 바대로’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로 한정한 것이다. 델라웨어 등 일부 주에서 회사와 주주에 대한 이중 충실의무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한국과 달리 배임죄 규정이 없다. 만약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가 법제화되면 한국의 이사는 회사·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와 함께 배임죄 처벌까지 부담해야 한다.

이사의 충실의무 원천은 민법의 위임규정과 이를 준용한 상법 규정에 따른 회사와 이사 간에 맺은 계약이기에 충실의무 대상은 계약관계 당사자인 회사로 한정돼야 논리에 맞다. 상법상 이사는 회사의 대리인으로 주주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사의 주주로의 충실의무 확대는 법적 근거가 없는, 법치에 반한 것이다.

한국 증시는 박스권에 갇혀있다. 윤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밸류업 프로그램은 ‘주가순자산비율’이 1 미만인 저평가된 주식이 제값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상속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면제 등은 옳은 방향이지만 상법개정 논의는 ‘투자결정과 신산업 진출’ 주체인 기업에 불확실성을 더하는 것이다. 이사에게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과할 게 아니라, 명문화된 ‘경영판단원칙’을 허용해 기업가정신을 북돋아주고 이현령비현령의 배임죄 적용을 막아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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