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빵집의 기적?…"성심당은 사랑입니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4-04-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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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성심당 케익부띠끄 앞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전 성심당 케익부띠끄 앞 시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전의 명물, ‘성심당’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대형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를 제친 것으로 나타나면서 놀라움을 자아냈죠.

19일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성심당의 매출은 1243억 원으로 전년(817억 원) 대비 50% 넘게 증가했습니다.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단일 빵집 브랜드 매출이 1000억 원을 넘은 건 성심당이 처음입니다.

성심당은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대전의 토종 빵집 브랜드입니다. 이른바 ‘빵지순례’, 유명 빵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목표 1순위로 거론되는데요. 성심당은 대전 외에는 지점을 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빵지순례는 대전의 관광 문화로까지 자리 잡았죠. 이들에겐 “성심당에 가기 위해 대전에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습니다. 이곳의 빵만을 위해 KTX 티켓을 예매하는 이들도 적지 않죠.

지난달에는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 성심당이 출현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이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를 위해 한국에 방문한 은사 데이브 로버츠 LA 다저스 감독에게 성심당 빵을 선물한 건데요. 로버츠 감독은 성심당의 대표 메뉴, 튀김소보로를 맛본 후 감탄하면서 엄지를 치켜들었죠. 이 장면을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저거 한 번 먹고 미국 가면 그리워서 어떡하냐”, “빵 맛이 그리워서 한화 감독으로 오는 것 아니냐”, “지금도 대기 줄이 긴데, 미국까지 소문나면 어떡하냐” 등 농담 반 진담 반(?) 반응이 속출했습니다.

사실 성심당에 대한 대전 시민들의 애정은 각별합니다. ‘사람은 변해도 성심당은 변치 않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인데요. 성심당이 대전을 넘어 전국적인 사랑을 받게 된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18일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성심당의 매출은 1243억 원으로 전년(817억 원) 대비 50% 넘게 증가했다.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18일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성심당의 매출은 1243억 원으로 전년(817억 원) 대비 50% 넘게 증가했다.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동네 찐빵집에서 시작한 성심당…제과제빵 전문점 브랜드 평판 1위로 거듭나

성심당은 대전 은행동에 있는 본점부터 대전역점, 대전컨벤션센터(DCC)점, 롯데백화점 대전점이 4곳이 있습니다. 여기에 케이크와 구움과자류를 판매하는 케익부띠끄 매장도 따로 있죠. 지금은 5개에 달하는 매장을 자랑하지만, 성심당의 시작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 시작은 1956년 대전역 광장 노천 찐빵집이었죠.

함경남도 함주가 고향인 임길순 씨는 1·4 후퇴 때 가족과 함께 월남했습니다. 임 씨 가족은 거제도에 터를 잡고 생계를 꾸렸지만, 고된 삶에 서울 상경을 마음 먹었죠. 그런데 기차가 대전역에서 고장으로 멈춰 섰는데요. 당시만 해도 열차가 한 번 고장 나면 언제 다시 달릴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습니다.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릴 순 없었기에, 천주교 신자였던 임 씨는 대전역에서 가까운 대흥동 성당을 찾았습니다.

당시 신부는 임 씨가 흥남 부두를 탈출해 대전까지 오게 된 과정을 들은 뒤 미군이 나눠준 밀가루 2포대를 건넸습니다. 대전의 대표 빵집인 ‘성심당’이 시작된 순간입니다. 임 씨의 아내 한덕순 씨는 밀가루로 찐빵을 만들어 팔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렇게 세운 찐빵 노점 앞에는 나무 팻말로 성심당(聖心堂)이라는 간판도 세워졌습니다. 예수님 마음을 담아 판다는 의미였죠. 다행히 미군의 구호품인 밀가루가 대전역을 통해 유통되던 시절이어서 재료를 구하기도 쉬웠습니다.

찐빵은 곧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단팥을 듬뿍 넣은 데다가 당일 만든 신선한 찐빵만 판매한 게 인기 요인이었는데요. 임 씨 가족은 하루에 찐빵 300여 개를 만들면 100여 개는 고스란히 남겨 고아나 노숙인들에게 나눠줬다고 합니다. 2년 뒤엔 목천교 인근 월세 점포에서 제과점으로 거듭났고, 1967년 본격적으로 ‘전설의 빵집’이 시작됐죠.

성심당은 임 씨가 1997년 작고한 후 아들 영진 씨가 2대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전역 앞 노점으로 시작된 찐빵 가게는 직원 900여 명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또 제과제빵 전문점 브랜드 평판 1위로 우뚝 섰죠.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9일 발표한 4월 제과제빵 전문점 브랜드 평판 분석 결과에서도 어김없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서울 중구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중구의 한 파리바게뜨 매장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뉴시스)
예고 없이 찾아온 위기…대형 프랜차이즈 등장하고 가게는 잿더미로

물론 성심당에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등장한 겁니다. 고려당, 신라명과, 뉴욕제과부터 파리바게뜨, 뚜레쥬르의 맹공이 펼쳐졌습니다.

임영진 대표의 동생도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 대전 하소동에 공장을 차리고 가맹점을 모집했는데요. 이때 성심당은 서울 롯데월드까지 24곳의 가맹점에 빵을 배달했지만, 사업은 결국 부도가 났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도심이 형성되면서 원도심 상권은 쇠퇴했고, 손님은 급감했죠.

2005년에는 성심당의 존폐까지 달렸던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여러 경제적 악재가 덮쳐서 회사의 미래도 불투명하던 차, 가게가 잿더미가 된 겁니다. 성심당을 부동산에 내놓기까지 하며 위기를 맞닥뜨린 순간, 힘이 되어준 건 직원들과 대전 시민들이었습니다. 화재 현장에 모인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복구에 나섰고, 어렵게 구한 중고 기계로 일주일도 안 돼 다시 빵을 굽기 시작했죠. 시민들은 하루 종일 줄을 서며 빵을 샀고, 화재 이후 성심당 매출은 30%가량 올랐다고 합니다.

성심당의 대표 메뉴 튀김소보로의 인기도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빵이라고 하면 단팥빵이나 크림빵, 소보로, 도넛만을 떠올리던 시절, 영진 씨는 새 공장장과 기존 대표 메뉴였던 단팥빵과 소보로, 도넛의 맛이 어우러진 특별한 신메뉴를 고안했습니다. 고심 끝에 탄생한 게 튀김소보로인데요. 빵을 튀기는 고소한 냄새와 기술적인 방식은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달콤한 맛,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으로 곧바로 성심당의 대표 메뉴가 됐죠.

현재는 튀김소보로 외에도 대표 빵이 즐비합니다. 보문산메아리, 명란바게트, 소금빵, 잠봉뵈르, 고로케, 튀김주먹밥, 롤케이크 등 종류도 다양한데요. 딸기 철에 선보이는 케이크, 딸기시루도 높은 인기를 자랑합니다. 오픈런은 기본이고,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웃돈을 얹어 구입하는 이들까지 있습니다.

뛰어난 맛은 물론 품질이 뛰어난 원재료, 푸짐한 양, 그리고 가성비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 성심당인데요. 대전 시민에게 ‘성심당에서 튀김소보로만 샀다’는 말을 하면 ‘다른 맛있는 빵도 그렇게 많은데 왜 그랬냐’고 타박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웃음을 자아냅니다.

▲성심당 매장에서 빵이 판매되고 있다. (연합뉴스)
▲성심당 매장에서 빵이 판매되고 있다. (연합뉴스)
‘나눔 철학’ 빼놓을 수 없어…성심당 인기 어디까지

대전 시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성심당의 인기는 단순히 맛 때문만이 아닌 듯합니다. 성심당이 오늘날 이토록 큰 인기를 자랑하는 데엔 창업주의 윤리적 경영도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선 성심당은 ‘빵은 신선해야 한다’는 철칙으로 당일 생산·당일 판매 원칙을 고수합니다. ‘대전 외 지역에 분점은 없다’는 원칙으로 ‘대전의 명물’ 이미지까지 구축했습니다. 대신 대전역에 지점을 내, 환승하는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게 했죠. 서울의 한 유명 백화점 본점에서 원하는 곳, 원하는 크기만큼 자리를 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임영진 대표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를 거절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심당은 “우리 곁에 불행한 사람을 둔 채로 혼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신념에 따라 ‘나눔’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습니다. 이 같은 철학은 가톨릭교회의 사회운동인 포콜라레 운동으로도 확장됐는데요. 임길순 창업주가 찐빵 300여 개 중 100여 개를 남겨 이웃에게 나눠준 것처럼, 매일 팔고 남은 성심당 빵과 제과는 모두 기부합니다. 이와는 별개로 월 3000만 원가량의 빵을 보육원, 양로원, 장애인 시설, 복지센터 등에 보내기도 하죠. 선대의 정신이 계승된 겁니다.

100% 정직한 납세를 기업가의 기본 자세로 삼을 뿐만 아니라, 한 해 발생하는 기업 이윤의 15%를 직원에게 돌려주는 것을 경영의 원칙으로 삼습니다. 인사고과의 40%는 ‘동료 간의 사랑과 배려’가 기준이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정기적으로 장학금도 주고 있습니다. 성심당은 이웃 돕기 공로로 교황청이 수여하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기사 훈장’ 등 수많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공유경제와 시민경제학의 권위자 루이지노 브루니 이탈리아 룸사대 교수는 2016년 한국을 방문해 ‘모두를 위한 경제’(Economy of Communion·EoC)를 소개하는 강연에서 성심당의 경영 사례를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대기업이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20세기 기업관”이라며 “성심당은 분배와 성장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대안이자 시민경제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말했습니다.

튀김소보로와 딸기시루 등 주력 제품의 인기와 유명세뿐 아니라 대를 이어오고 있는 남다른 경영 철학이 지금의 성심당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는데요. 성심당의 인기는 앞으로도 이어질 듯합니다. 곧 판매가 종료되는 딸기시루 대신 출시되는 망고시루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입니다. 공교롭게도 최근 서울 한 유명 호텔이 애플망고빙수의 가격을 10만 원대로 인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망고시루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도 더욱 높아지는 모양샌데요. 당분간 성심당 앞에 길게 늘어진 줄도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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